[최규철칼럼]JP의 '쿠오바디스'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8시 32분


대선정국의 한 줄기에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 반란’이 일어나자 대로한 김종필 총재(JP)는 “갈 사람은 다 가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처연한 모습이었다. 대선후보 단일화의 한 축이 그의 손안에 있었던 5년 전 대선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든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측과 밀사협상을 벌일 당시 JP에게 쏠린 스포트라이트가 어떠했는가. 상한가를 치면서 대권 향방을 주무르는 맛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JP가 선 대선 무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명은커녕 관객도 썰물처럼 빠져버렸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진 모양이지만, 이 지경은 JP가 자초한 것이다. 달아난 사람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JP에게는 60년대 공화당 창당 때부터 혁명동지를 비롯해 측근들과 자주 헤어지는 사연이 이어져 왔다.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한계에 이른 리더십▼

탈당 의원들이라고 ‘변절과 배신의 철새 정치인’이라며 쏟아질 비난과 질책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결행했다. 왠가. 한마디로 JP의 리더십 아래서는 후년 17대 총선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JP는 엄정하게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JP로서는, 그들을 이끌고 충청지역의 정치 지리적 불리함을 이겨내며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에서 잇달아 집권세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었던 업적을 몰라주느냐고 호통칠 수 있을 것이다. 또 총리와 장관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공인 줄이나 아느냐는 볼멘소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JP가 직시해야 할 것은 옛날이 아니라 내일이다. 탈당 의원들은 내일을 더 중시했다. 결국 JP가 보여 줄 수 있는 리더십에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의리도 없는 배신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의리와 리더십은 별개다. 그 구분을 JP가 먼저 했어야 했다. 그것이 정치판의 현실인 것은 JP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JP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을 몰랐다. 아니 알았다 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는 점이다. 시간(right time), 장소(right place), 사람(right man) 모든 면에서 자신의 값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것을 몰랐거나 무시한 것이다. 김영삼 정권에서 3당 합당의 과실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냈고, 현 정권에선 DJP연대의 공으로 총리에 오른 JP의 ‘화려한 경력’은 한때 그의 추종자들에겐 사회적 신분 상승의 요긴한 사다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공화당 때를 제외하더라도 JP만큼 청와대 권부를 자주 드나들었던 정치인이 또 있을까. 여기서 그의 ‘권력 근거리행적’을 잘 볼 수 있다. JP의 능굴능신(能屈能伸)을 정치력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바뀌었다. ‘언제 때 JP냐’라는 반응이 주류다. 어느새 그의 화려한 전력은 ‘변신의 오욕’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 시대의 변화를 명백히 드러낸 것이 2000년 4·13총선이다. 96년 총선 후 50석이었던 자민련이 겨우 17석을 얻었을 때 민심의 지탄을 알았어야 했다. DJP연대를 비롯해 전력에 대한 심판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총선 참패 아닌가.

▼시대의 변화 외면할 건가▼

소속 의원들은 다시 그런 심판이 두려웠고 변할 줄 모르는 JP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JP가 걸어온 권력동반의 끝도 해피엔딩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JP처럼 잦은 파경을 겪은 ‘정치이혼녀’도 없다. 요즘 쓸쓸해진 처지도 이혼의 업보다. 선거철인데도 선뜻 내미는 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끝에 살아남는 자를 승자라 한다지만 아무도 그를 승자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2선 후퇴론’이 나온다.

JP는 이번에도 내심 이리저리 대선연대 동반자를 찾는 중이다. 물론 그가 선택할 일이지만 모양이 구차스럽다. 문제는 ‘시대의 변화와 민심의 향방에 걸맞은 것이냐’다. 중국에선 장쩌민 국가주석 세대가 동반 퇴진했다는 소식이다. ‘감이 떨어지면 겨울이 오는 줄 알아야지 서리 내릴 때까지 있다가는 얼어 죽고 만다’는 속담이 있다. ‘혁명아 JP’의 40년 정치인생을 어떻게 정리하느냐 숙고할 때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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