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HOT]히스패닉계 첫 ML단장의 선택

  • 입력 2002년 4월 2일 19시 40분


새미 소사를 미국으로 데려왔던 주인공 오마 미나야가 히스패닉계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단장이 됐다. 지난 수년간 뉴욕 메츠의 부단장으로 활동했던 미나야는 우려 속에서 몬트리얼 엑스포스의 단장직을 맡기로 했다.

엑스포스는 9개월 후에 프랜차이즈가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팀에 단장으로 가게 된 미나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람들은 "메츠가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했는데 왜 편한 자리를 뒤로 하고 고생길을 택하는지 모르겠다"며 그의 엑스포스 행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 했다.

미나야가 엑스포스 단장직을 수락한 것은 개인적인 명예 때문은 아니었다. 히스패닉계가 단장으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재키 라빈슨(Robinson)이 야구에서 인종의 벽을 허물고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히스패닉계로 성공하고 펠리페 알루가 히스패닉계 첫 감독이 된 것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고 자신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가 단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9개월 후에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은 엑스포스는 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한 팀이다. 짧은 목숨의 팀이 유망주를 영입할 수도 없는 것이고 팀 연봉이 낮기 때문에 베테런 선수를 데려와 팀 전력을 강화할 수도 없다. 미나야는 그러나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나야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고 구단의 스카우터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매리너스 구단에서 방출된 후 메이저리그 스카우팅국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빈자리가 없어 텍사스 레인저스에 둥지를 튼 바 있다. 당시 레인저스의 샌디 잔슨 단장은 그에게 스카우터 자리를 줬다.

미나야는 스카우터 일을 시작하자마자 히스패닉 유망주를 찾아 나섰다. 그가 미국으로 데려온 선수는 새미 소사, 후안 곤잘레스 등이었다. 16세 소년이었던 소사는 레인저스와 3천5백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후 미나야는 마이너리그 팀은 골프 코스트 레인저스의 코치로 활동했다. 당시 팀에는 소사, 곤잘레스, 케빈 브라운, 딘 파머, 호세 허난데스 등 미래의 스타들이 뛰고 있었다.

그는 수년 후인 95년 스카우터로 다시 돌아왔고 레인저스의 국제 스카우팅 부서의 디렉터로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97년 메츠의 부단장으로 스카웃 됐다. 그는 야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겪은 인물인 것이다.

-밥 나이팅게일

[원 저작권자: 베이스볼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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