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이부부의 세계 맛기행]헝가리-굴라쉬는 이제 그만

  • 입력 2001년 12월 3일 10시 04분


얼마전 유행했던 유모어 시리즈 중에 '마누라가 무서워 질 때'라는 유모어가 있었죠. 그 가운데 50대 남편에게 마누라가 가장 무서워 질 때는 '곰탕 끓일 때'라고 하더군요. 곰탕 한 솥 끓여놓고 '끼니마다 데워 먹어욧!' 한마디 남기곤 혼자 동창회니 계모임이니 놀러다니기 때문이라나요. 몸에 좋고 맛있는 것도 한두끼여야지 며칠째 계속해서 같은 것만 먹을라치면 이만저만 고역이 아닐테니까 말이죠. 이거라도 끓여놓고 나가면 다행이라구요? (우리 홍대리의 마음을 누가 읽으셨나... 곰탕 끓이는 쪽은 홍대리랍니다. ^^; )

헝가리란 나라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도 헝가리요리 '굴라쉬'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 기억으론 중학교땐가 고등학교때 사회책에 그 이름이 나왔던 것 같은데(왜 나왔었는진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이것저것 넣어 끓이는 스프라고만 알고 있었지요. 동유럽 들어와서 이름 어려운 음식이 한둘이 아닌데 이전부터 많이 들어본 이 이름을 듣고 나니 한결 안심이 되더라구요. 어디가서도 이름 몰라 못찾아먹진 않겠다는 생각에 말이죠. 설마 이렇게 많이 먹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엔 일명 '노랑 아줌마'란 분이 계십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헝가리 아줌마인데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면 역에 나와 한국 배낭여행객들을 쪽집게처럼 찝어 데려가는데, 이 아줌마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란 옷만 입고 나와있어 그런 별명이 붙었죠. 여행하다 만난 한국 배낭여행자들이 이 친절한 주인아주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아줌마 기분이 좋으면 전통 음식인 '굴라쉬'를 맛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었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해서 여기로 숙소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금발)부터 운동화까지 노란색으로 차려입은 아줌마가 역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찍어 집으로 데려가더군요.

다음날 아침. 혹시 오늘 아줌마 기분이 좋아서 굴라쉬를 해주시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했었다. 오홋. 재수좋게도 그날이 그날이었는지 벌건 국물의 굴라쉬가 아침으로 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그 굴라쉬라는 것이 냄새도 맛도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거의 흡사한 국물에다 밥까지 말아 말아주더라구요.

저희는 '관광객용 음식이 아닌 현지인이 일상에서 먹는 전통 음식을 먹어보게 되다니. 정말 행운이군!' 하며 흐뭇해 했었지요. 물론 맛도 나쁘지 않아서 육개장만큼 얼큰하진 않았지만 이제까지 먹던 다른 서양 음식에 비해 훨씬 개운한 매운맛을 가진 음식이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굴라쉬(Gulyas-헝가리에선 '구야쉬'로 읽지요.)'는 두가지 버젼이 있더라구요. 하나는 고기,마늘, 양배추, 후추 등과 파프리카라는 '피망'하고 꼭 같이 생겨서 매운 맛을 내는 야채를 넣고 푹 끓여 스튜 형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국물 없이 찜처럼 먹는 것인데 내친김에 그것도 먹어보자고 그날 점심은 식당에서 또 다른 굴라쉬를 주문해 먹었지요. 홋홋홋. 이 굴라쉬란 음식은 골고루 먹어보고 완전히 마스터했구만... 하고 뿌듯해 했음은 물론이구요.

보통은 빵과 같이 먹거나 투로니아(Turhonya)라고 하는 헝가리식 누들을 곁들여 먹는데 이 민박집에선 한국 입맛에 맞게 밥을 넣어준 것이었죠. 식당에서 먹은 굴라쉬에 같이 나온 '투로니아라'는 밀가루와 계란을 알알이 뭉쳐 만들어서 마치 굵은 보리알을 익힌 것 같은 맛이 났습니다.

둘째날 아침. 오늘 아침은 또 뭘 주려나(혹시 다른 전통 음식?) 하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라?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바로 그 굴라쉬가 나오는게 아닙니까. 아주 맛있진 않았지만 아침에 빵 먹는것 보단 국물에 밥 말아먹는게 훨씬 낫다 싶어 또 한그릇 뚝딱 먹었죠. 아줌마가 오늘도 기분이 좋으신건가? 너무 오래 기분이 좋으시면 안되는데....

하지만 우리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았습니다. 그 민박집에 머무는 나흘동안 연짱으로 아줌마의 기분이 그냥 좋아버렸던 것입니다. 처음 먹을 때 오랜만에 먹는 '얼큰 비스므리한'맛에 감동했던 우리로서도 '4일 연속' 같은 굴라쉬만 먹었더니 이젠 '굴라쉬' 이름만 들어도 위장에 밥알이 '굴러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침 전에 주방을 슬쩍 봤더니 정말 우리나라 곰탕끓이는 커다란 냄비에 한 솥을 끓여놓고 조금씩 퍼주고 있더라구요.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두려워지면서 '곰탕 한 솥 끓여놓고 놀러간 마누라의 남편'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요. 아무리 맛있게 만들었다 해도 역시 같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 어디서 먹나요?

굴라쉬는 헝가리의 전통음식 중의 하나로 헝가리 서민들의 대표적인 요리라고 할 수 있지요. 특히 스튜 형태의 굴라쉬는 아침 식사때면 정육점에서 만들어 팝니다. 아무래도 고기를 많이 넣고 오래 삶아야 하니 그런가봐요. 아침이면 이곳 현지인들은 정육점(!)에 들러 굴라쉬 스프 후루룩 먹고 일하러 나간데요. 그러니 민박집에서 나흘동안 굴라쉬 먹는다고 좋아하지 말고 이곳 사람들이 먹고 있는 근처 가게에서 한끼만 딱 드셔보세요.

찜처럼 생긴 또다른 형태의 굴라쉬는 상당히 국제화되어서 헝가리 뿐 아니라 근처 도시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랍니다. 저희가 먹은 곳은 헝가리 젊은애들에게 소개받은 곳인데, 식당이 현지인으로 발디딜틈 없이 꽉 차는 활기차고 멋진 식당이었습니다.

'Fatal'이란 식당이고 주소는 부다페스트의 번화가 Vacci Utca 67번지예요. 여긴 굴라쉬 이외에도 맥주 한잔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각종 푸짐한 먹거리들이 재미있는 접시들에 담겨 나오니 현지 젊은이들의 떠들석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신분들께 꼭 추천합니다.

☞ 가격

민박집 아줌마 굴라쉬는 공짜!

식당에서 먹은 찜 형태의 굴라쉬 1380포린트 (헝가리 1포린트=한화 약 4.7원)

사실 나흘 연짱으로 먹어서 그렇지 굴라쉬는 맛이 참 괜찮아요. 저희가 쓴 글 중에서 '아주 맛있다'고 쓴 글이 많지 않은걸 혹시 눈치채셨나요? 저희는 체면이고 뭐고 없이 우리 입맛에 안맞으면 그냥 맛없다,이상하다고 말하거든요. 굴라쉬는 많고 많은 닝닝하고 느끼한 유럽 음식 중에서 그나마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음식중의 하나랍니다. 혹시 제목만 보고 안드시겠다 하시는 분 계실까봐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거예요. ^^;

그래도 가끔 굴라시 국물 생각나는 꿈틀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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