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임권택/스크린쿼터와 한국영화의 경쟁력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5분


조선시대 일본을 다녀온 두 대신은 선조 앞에서 각기 다른 보고를 했다. 침략의 위험이 없다고 말한 대신의 손을 들어준 선조는 결국 임진왜란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평생을 영화 현장에서 일해온 필자로서는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폐지 주장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경쟁력에 도움이 안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현실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가 제대로 운용된 것은 최근 몇년간이다. 85년 외화 수입 자유화와 87년 직배 허용 이후 외화 수입편수가 급작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수입편수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에 대한 관심이 작았고 감독도 소홀했다.

스크린쿼터가 제대로 지켜진 것은 93년 스크린쿼터 감시단이 발족한 이후부터였다. 그전에는 법은 있으되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제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난 30여년간 스크린쿼터제의 효용을 논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최근 몇년간 한국 영화의 제작편수가 줄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의 현실성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제작편수만 논할 것이 아니다. 외화수입 자유화 이후 93년 16%까지 뚝 떨어졌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5.2%까지 상승했다. 94년부터는 편당 관객동원에서 한국영화가 외국영화를 앞서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한국영화가 변모하고 있다는 증표다. 이런 상승세는 스크린쿼터가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한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제작편수는 18편으로 작년 상반기에 비해4편이적었다.그러나 극장들의 평균 한국영화 상영일수는 42.9일로 작년 상반기 43일과 비슷했다. 부족한 제작편수를 흥행력이 메웠기 때문이다.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조용한 가족’ ‘찜’ ‘여고괴담’ 등…. 누가 스크린쿼터 때문에 억지로 간판을 올렸다고 말하겠는가.

지금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적은 해에는 문화관광부장관의 재량으로 스크린쿼터를 20일 줄일 수 있고 명절연휴 등 이른바 성수기 때 한국영화를 상영한 극장에 대해서도 20일을 감해준다. 즉 각종 감경일수 40일을 제하면 실제 의무상영일수는 1백6일에 불과하다. 제작편수가 적다고 연동제를 운운하는 것은 절대 의무상영일수를 줄이자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그렇다고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국 영화관객들이 볼 영화를 못 보는 일은 없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세계에서 외화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96년엔 4백83편으로 수입 영화편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스크린쿼터제와 여타의 영화진흥정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인 중 누구도 스크린쿼터를 만사(萬事)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좋은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그것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영화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영화진흥을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겠지만 쿼터제 또한 없어서는 안된다. 제작지원 등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프랑스조차 왜 쿼터제를 운용하고 있는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한국영화가 상승세를 타고 있고 완전등급제 논의 등으로 영화의 소재가 개방된 지금부터야말로 스크린쿼터제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임권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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