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기업인의 마음가짐

  • 입력 1997년 10월 1일 19시 55분


사업에 성공한 사람을 놓고 간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운이 좋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을 하려면 그에 값하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친은 사업 성공의 요체로 운(運) 근(根) 둔(鈍) 세가지를 꼽으셨는데 여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보탠다면 먼저 운이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운의 이면에는 남모를 고뇌와 노력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근이란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끈기와 집념을 의미하고 둔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 인재 홀대땐 오래 못가 ▼ 나는 선친이 말씀하신 운 근 둔을 염두에 두면서 사업하는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정해 두고 있다. 먼저 사업 초기에 다졌던 초심(初心)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기업인이 잠시의 성공이나 실패에 흔들리면 큰 성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호불황 때마다 내가 이 사업을 왜 시작했는지를 자문하면서 초심을 다시 새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는 일시적 이익보다는 신용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 어떤 고객이든 좋은 품질과 친절한 서비스를 원하지 불량품이나 불친절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객에게 한번 신용을 잃게 되면 아무리 좋은 품질, 싼 가격으로도 고객의 발길을 되돌려놓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본의 기업인들을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고객을 향해서는 발도 뻗지 않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소홀히 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본다. 기술 발달이 자동화를 실현하고 첨단 컴퓨터가 시스템화를 불러온다 해도 일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나는 경영자로서 사람을 소홀히 해서 얻은 돈은 무의미하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업의 부실경영은 기업주나 경영진만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종업원과 그 가족의 생계, 협력업체의 경영에 부담을 주고 나아가 국민경제 전체에 주름살을 만든다. ▼ 사회적인 책임 자각해야 ▼ 나는 기업을 잘못 경영하여 부실하게 만드는 것은 경영상의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은 모름지기 기업경영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기업을 알차고 살찌게 만들어 가야 한다. 나는 천년 로마가 멸망한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최근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도 그 근본원인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적 성장에 자족하여 저성장 시대가 요구하는 질적 전환이나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인은 항상 조직에 나타나는 자만과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사업이 자기 힘만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태만과 부패가 시작되고 고객이나 제품개발에 소홀하게 된다. 자연히 신용과 이미지 추락이 뒤따르고, 그렇게 되면 그 기업에는 더 이상 앞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에세이 연재를 50회로 끝맺습니다. 이회장과 높은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에세이는 동아일보사 출판국에서 단행본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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