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 4개월… 센다이 다시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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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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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박형준 기자 현지르포…
‘폐허속의 축제’ 전국서 37만명 모였다

17일 일본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서 동북부 6개 지방의 마쓰리를 한곳에 모아놓은 ‘롯콘사이’ 퍼레이드를 끝낸 무용수들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이 무용수가 관람객들에게 손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센다이=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17일 일본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서 동북부 6개 지방의 마쓰리를 한곳에 모아놓은 ‘롯콘사이’ 퍼레이드를 끝낸 무용수들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이 무용수가 관람객들에게 손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센다이=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무용수들은 웃고 있었다. 34도까지 치솟은 찜통더위 속에 무용복까지 겹겹이 입어 땀이 쏟아졌지만 춤사위에는 힘이 넘쳤다. 갓 돌이 지난 아기를 안고 춤추는 엄마, 얼굴 주름을 화장으로 곱게 가린 70대 할머니도 있었다.

구경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일본 이와테(巖手) 현 아오모리(靑森) 지방 축제에 등장하는 네부타(ねぶた·신화에 나오는 장수 얼굴을 희화화해 그린 대형 그림)가 모습을 드러내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네부타가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자 카메라 플래시가 작렬했다.

17일 일본 센다이(仙臺) 시에서 동북부 6개 지방의 마쓰리(축제)를 한곳에 모아놓은 롯콘사이(六魂祭)가 열렸다.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대재앙을 이겨내자는 염원을 담아 올해 처음 열린 축제다. 모리오카(盛岡)의 전통 춤인 ‘산사 춤’을 선보인 요시다 사키(吉田早紀·여) 씨는 “구름처럼 몰린 인파의 관심이 동북지역 부흥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틀간 행사에 일본 전역에서 약 37만 명이 몰렸다. 준비위원회의 예상인원 10만 명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센다이 시 인구(104만 명)의 3분의 1이 넘는 인파였다. 16일 2시간 동안 예정된 퍼레이드는 관광객이 도로까지 차지하는 바람에 행사가 20분 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이세 후미하(伊勢文葉·여) 센다이 시청 국제프로모션추진실장은 “지진 피해지에 힘을 모아주기 위해 전국에서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축제 기간에 센다이행 신칸센은 빈 좌석이 없이 꽉 찼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4개월 10여 일이 지났다. 일본은 지진 피해지 제품을 구매하는 운동을 벌이고,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며 대재앙 극복에 힘을 쏟고 있다.

○ “대재앙에 질 수 없다”

14일 미야기(宮城) 현 구리하라(栗原) 시에 있는 정밀 액정가공회사인 구라모토제작소 사무실에 들어서자 열기가 후끈했다. 기온이 33도를 넘었지만 사무실엔 선풍기 1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스즈키 사토시(鈴木聰) 사장은 “에어컨이 없어 죄송하다. 대지진 후 공장은 복구했지만 아직 사무실은 엉망진창이어서 임시로 에어컨 없는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진 피해지역 돕자… 제품 구매 국민운동 ▼
“더 팔고 싶어도 물건 없어 못 팔아”


되살아난 항구… 관광객 2만여 명 몰려 일본 동북부의 전형적 항구도시인 시오가마 시는 3월 11일 대지진 때 쑥대밭이 됐다. 배가 인도 위로 떠밀려 올라왔고 보도블록이 무수히 깨졌다(위 사진). 하지만 이달 18일 시오가마 항구는 말끔하게 정리됐고 ‘시오가마 항구 축제’에 2만3000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시오가마=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되살아난 항구… 관광객 2만여 명 몰려 일본 동북부의 전형적 항구도시인 시오가마 시는 3월 11일 대지진 때 쑥대밭이 됐다. 배가 인도 위로 떠밀려 올라왔고 보도블록이 무수히 깨졌다(위 사진). 하지만 이달 18일 시오가마 항구는 말끔하게 정리됐고 ‘시오가마 항구 축제’에 2만3000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시오가마=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구라모토제작소는 대지진 때 공장 천장이 무너지고 설비도 대부분 부서졌다. 피해액은 13억5000만 엔(약 181억 원). 하지만 전 직원의 노력으로 두 달 만에 공장은 정상 가동됐다. 재가동 직후부터 매출액은 예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거래처들이 예외 없이 복구를 기다려줬기 때문이다. 스즈키 사장은 “지진 피해 복구에 직원, 거래처, 건설회사 등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스즈키 사장은 직원들에게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던 2개월 동안의 임금을 모두 지급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최근 지진 피해지역에 공장을 둔 80개 기업을 긴급 조사한 결과 7월 말이면 약 90% 공장이 생산을 재개할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말이면 거의 100% 생산 재개가 가능하다.

센다이 시에서 주류 유통 사업을 하는 아사노 야스시로(淺野康城) 씨는 최근 깜짝 놀랄 일을 겪었다. 후쿠시마(福島) 원전 문제로 해외 수출에 지장을 받았지만 술 판매 총량은 대지진 전보다 더 늘어난 것이다. 일본 전역에서 ‘동북부 지역의 술을 마시자’는 운동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아사노 씨는 “쓰나미로 사케 4000병(약 200만 엔)을 실은 컨테이너가 떠내려갔을 때는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근 지진 피해지역 술 구매운동이 일어나면서 팔고 싶어도 술이 없어 못 파는 상황”이라며 활짝 웃었다.

‘바다의 날’로 휴일이었던 18일 미야기 현 시오가마(鹽釜) 시 항구에는 형형색색 깃발을 꽂은 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풍어(豊漁)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축제가 열린 것. 다카하시 에이지(高橋英治) 시오가마 시 총무부 기획계장은 “태평양전쟁에 패한 후 기운을 내기 위해 이 축제가 시작됐다. 올해도 힘을 내자는 의미로 강행하자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2만3000명이 모여 작년(1만9000명)보다 참석자가 21% 늘었다.

○ 에너지에 대한 인식 변화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에 있는 소수력 발전회사 시벨의 운노 유지(海野裕二) 대표는 11일 오후 바이어와의 상담에 한창이었다. 그는 “올해 3월 대지진 이후 문의전화를 20배 이상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시벨은 낙차가 없어도 수력 발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대지진 때 가솔린 공급이 중단돼 교통대란이 일어나자 일본의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관심을 돌리면서 최근 주문이 크게 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14일 “원자력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수력, 풍력, 태양력 발전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미 지자체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오쿠야마 에미코(奧山惠美子·여) 센다이 시장은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자연에너지를 개발할 것이다. 센다이는 일조시간이 길어 태양열을 이용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쓰나미 피해가 컸던 이와테 현은 최근 시벨에 소수력 발전기 100여 대를 주문했다.

○ 새로 생긴 ‘쓰레기 산’

쓰나미 발생 4개월이 지났지만 동북부 연안지역은 여전히 생채기가 남아 있다. 센다이 시에서 동북쪽으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에는 입구부터 파리가 들끓었다. 부패한 생선이 오랫동안 방치돼 독한 악취를 풍겼고 개울은 시커멓게 변했다. 나루터에는 대형 선박이 여전히 뒤집힌 채로 남아 있다.

다행히 쓰레기 잔해는 상당 부분 처리돼 승용차로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확보됐다.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둔 ‘쓰레기 산’도 곳곳에 있다. 미야기 현은 “쓰레기를 분리해 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센다이 항구는 겉보기에 말끔하게 정리가 됐다. 4개의 타워크레인은 아직 작동되지 않았지만 임시 크레인을 마련해 컨테이너를 선박에 싣는 작업도 가능했다. 하지만 바닷물에 부식되고 찌그러진 컨테이너 수백 개는 여전히 야적장에 쌓여 있다.

미야기 현 나토리(名取) 시의 해변마을 유리아게(.上)에 있는 논과 밭은 앞으로 2, 3년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쓰나미의 잔해는 모두 치웠지만 염분을 빼내는 작업에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 “복구비용 20조엔… 후대에 부담 안 주게 해야” ▼
이오키베 부흥구상회의 의장


일본 정부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때 경제구조를 고부가가치산업 구조로 바꾼 것처럼 이번 대지진 복구작업도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기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부흥 밑그림은 4월 간 나오토 총리 지시로 신설된 ‘동일본대지진 부흥구상회의’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부흥구상회의 위원들은 지난달 25일 ‘부흥을 위한 제언’이란 1차 보고서를 만들었고 간 총리는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12일 일본 도쿄(東京) 외무성 회의실에서 만난 부흥구상회의 의장인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사진) 방위대 총장은 “11월부터 본격적인 부흥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부흥 제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재해에 강한 도시, 재생가능 에너지 인프라, 일자리 회복, 국민 전체의 연대를 꼽을 수 있다. 똑같은 재해를 입지 않기 위해 (대지진 피해지역 재건 시) 고지대에 주거지를 만들고, 꼭 필요한 산업시설만 평지에 두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제언을 실행하기 위해선 약 20조 엔(약 268조 원)이 필요할 것 같다. 국채를 발행하면 후대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증세를 통해 현 세대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들은 이미 급료 10%를 깎아 부흥재정에 보태고 있는데, 국민의 동참도 필요하다.”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민들이 돈을 내는 데 반발하지 않나.

“큰 반발은 없다. 피해지역이 살아나야 일본 경제도 부흥할 수 있다. 국민 전체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재해지역과 연대해 아픔을 나누고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

―제언이 실제 실행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초당파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나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 대표도 폭넓게 만났다. 야당 대표도 ‘정치와 별개로 부흥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제1차 보정예산(추가경정예산)은 초당파적으로 합의돼 4조 엔이 재해지역에 긴급 투입됐다. 다른 하나는 피해지역의 자발적 노력이다. 지역민 스스로가 부흥구상회의의 제언을 바탕으로 마을을 재건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도쿄=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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