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마지막 나날들]전기도 물도 없는 집에서 쌀-파스타로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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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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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복이 밝힌 도피생활

최후까지 지녔던 권총 무아마르 카다피가 최후 순간까지 갖고 있었던 권총. 카다피는 이 권총 외에도 황금권총과 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최후까지 지녔던 권총 무아마르 카다피가 최후 순간까지 갖고 있었던 권총. 카다피는 이 권총 외에도 황금권총과 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마지막 나날들은 여느 도망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며칠 간격으로 계속 거처를 바꿨고, 전기와 물도 들어오지 않는 빈집에 숨어 사람들이 두고 간 쌀과 파스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카다피가 수르트 탈출 도중 반군에게 붙잡히기 전까지 그를 마지막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 인민수비대 사령관은 22일 미스라타의 군 정보기관 심문에서 도피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밝혔다. 카다피의 사촌이자 심복인 이브라힘은 20일 오전 카다피와 같은 차량에 탑승해 탈출하다가 부상을 입고 반카다피군에 체포됐다.

▽2개월간의 도피=진술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된 8월 21일 10명만 데리고 탈출해 거점도시인 타후라와 바니왈리드를 거쳐 당일 수르트에 도착했다. 최종 도착지를 수르트로 정한 것은 4남인 무타심이었다. 친척과 지지자들의 버려진 집을 전전하는 도피생활이 시작됐다. 카다피는 물과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부하들에게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은 없어”라고 되묻곤 했다. 카다피는 주로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고립된 카다피와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도구는 위성전화였다. 그는 시리아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카다피가 수르트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반군이 시내 중심부까지 진격해온 2주일 전쯤이다. 수백 명의 반군이 은신처 부근을 포위하면서 카다피 일행은 연결된 두 채의 1층 가옥 사이를 오가며 갇히는 신세가 됐다는 것. 수르트 행정구역상 2구역에 있는 집이다. 기관총 로켓포 박격포 소리가 크게 울렸다고 한다.

마침내 카다피는 인근에 있는 자신의 생가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고 20일을 D데이로 삼았다. 당초 오전 3시에 떠나기로 했지만 내부 혼란으로 오전 8시로 출발이 늦춰졌다. 카다피 일행의 차량 80여 대가 은신처에서 출발한 지 30분이 지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 전투기와 반군들이 추격해 왔다. 도요타 랜드크루저 차량에 탑승한 카다피는 별 말이 없었다. 나토 전투기는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위협용으로 차량 부근에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때 에어백이 터졌다. 카다피와 수행원들은 차에서 내려 공장지대 쪽으로 달려갔다. 그게 그의 마지막 도주가 됐다.

▽처형 논란 심화=생포된 카다피가 숨지게 된 경위와 관련해 의문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내가 카다피를 쐈다”고 주장하는 병사들이 나서고 있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벵가지 출신의 반군인 사나드 알사덱 알우레이비(22)는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서 “카다피에게 두 발을 쐈는데 한 발은 겨드랑이에, 다른 한 발은 머리에 맞았다. 즉사하지 않았고 30분 뒤 숨졌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주위에 몰려든 군복 차림의 군중은 그를 축하해 줬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루퍼트 콜빌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은 21일 “카다피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이 불투명하다”면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성명을 통해 리비아인이 독재자 카다피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보여줬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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