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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흐드러진 대학 캠퍼스가 돌연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어댔다. 인기 연예인이 찾아온 듯한 열기였다.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 젊은이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청춘의 멘토로 도전과 위로의 상징이 된
100인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 많은 벽을 넘어서야 했다. 도중에 넘어지거나 잠시 주저앉기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10년 뒤를 바라보는 이들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 환경이 ‘위장된 축복’으로 나를 가르쳤다”며 지난 시절의 역경을 오히
전 세계에 한류를 실핏줄처럼 퍼져나가게 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의 개척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상업고등학교와 야간대 출신으로 정부부처 차관에 올라 ‘성공 신화’를 쓴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 새터민 교육의 새 모델을 제시한 곽종문 한겨레중고
동아일보는 세 번째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을 선정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통산 3회 선정된 100인이 20명 탄생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00인은 △꿈꾸는 개척가(25명) △도전하는 경제인(25명) △미래를 여는 지도자(10명) △자유로운 창조인(25명
10년 뒤에도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영인이자 야구단의 구단주로 남고 싶다. 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얻은 배움을 하나씩 적어놓은 나만의 노트를 통해 ‘이것이 맞다, 맞지 않다’를 생각하고 판단한다. 또 창의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방법은
손흥민을 처음 봤을 때 “이놈, 물건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대성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래서 직접 보고 싶었다. 손흥민의 경기에 맞춰 지난해 11월 독일로 날아갔다. 직접 보니 역시
지애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몇 년간 꾸준히 지켜보면서 이런 사실을 새삼 확인할 때가 많았다. 웃을 때 작은 눈에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라식수술로 안경을 벗어 더 확실하다. 날렵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몸매, 어눌한 말투이긴 해도
동아일보의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된 조국 교수에게 찬의를 표한다. 선정의 의미는 그가 지금까지 보인 노력과 활동이 평가를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더 크고 더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정의 의미는 신인상과 같은 것
작년 여름 어느 날, 김빛내리 교수와 점심을 함께하다가 서울대 계약교수로 지내던 그의 ‘무명’ 시절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명’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계약 연장을 걱정하던 평범한 연구자에서 서울대(중견석좌교수)를 넘어 노벨상에 다가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
사실 이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아버지가 아들 하정우(본명 김성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나와 동년배인 배우들은 연기에 있어 나보다 아들이 낫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별다른 코멘트를 안 하는 편이다. 그
“지금의 삶이 힘들더라도 무엇을 위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해라, 그리고 길게 호흡하며 미래를 꿈꿔라.” 대학에서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고마워하는 학생이 많다. 입시의 벽을 어렵게 뚫고 들어와 학과 공부 외에도 아르바이트
《‘명사가 쓰는 100인 이야기’를 7회에 걸쳐 싣습니다. 올해 선정된 ‘10년 후 한국을 빛낼 100인’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스승과 선배, 동료 등 유명인사가 공개합니다. 개인적 인연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와 독자 여러분이 참고할 만한 시사점도 제시합니다.
‘동아 100인’의 대표적 창업주인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와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는 색다른 인연이 있다. KAIST 전산학과 박사과정이던 27세의 김영달 대표는 이광형 지도교수(현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로부터 미국 실리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대부호 가문은 자녀들에게 철저한 인문학 교육을 시키는 전통을 고수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돈을 세고 경영서적을 뒤적이는 것만으로는 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 가문은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 올
모든 아시아인이 매주 한 편의 한국 드라마를 보고, 1년에 한두 편의 한국 영화를 찾고, 손에 들린 아이팟에 한국 음악이 10% 담기는 날, 1970, 80년대 한국의 할리우드키드처럼 코리안키드가 생겨나는 날을 꿈꾼다. 앞으로 10년이면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