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과 성직자 등 인간사슬이”…노트르담 화재에도 문화재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7일 17시 25분


코멘트
뉴시스
“가시 면류관은 성당 뒤편에 있고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은 성구 보관실 근처에 있죠. 소방관들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자 그들은 바로 그 곳으로 갔어요. 이미 신도석에는 천장에서 불에 탄 잔해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엄청나게 위험한 순간이었죠.”

2016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대사제로 임명된 패트릭 쇼베 사제는 교회 유물의 모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쇼베 사제는 “소방관, 성당 스태프, 시청 직원들이 협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로 첨탑과 전체 지붕의 3분의 2 가량이 무너졌지만 두 개의 종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가시면류관,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 등 주요 유물들은 무사했다. 사전에 갖춰진 매뉴얼과 훈련, 그리고 소방관, 문화재 직원, 사제를 넘어 드론과 로봇까지 동원된 총력전의 결과였다.

● “아직 30분이 남아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소방대원과 사제, 문화재 담당자 등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아 인간사슬을 만들어 대성당 내부의 보물들을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인간 사슬의 선두에는 파리 소방서 사제로 복무 중이던 장 마크 푸르니에 신부가 나섰다. 푸르니에 신부는 위험한 상황에도 필리프 구종 파리 15구역 구청장에게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고 가시면류관을 비롯한 다른 유물을 구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지켜본 쇼베 대사제는 16일 전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쇼베 대사제는 “첨탑이 무너지고 북쪽 탑에 불길이 보이기 시작하자 소방대는 즉각 10명의 소방관을 북쪽 탑으로 보냈다”며 “그들은 북쪽 종탑의 불을 끌 수 없다면 이들이 불을 끄다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 불을 끄지 못하면 남쪽 탑을 비롯한 다른 곳으로 옮겨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쇼베 대사제는 “당시 현장에는 거대한 침묵이 흘렀다”며 비장했던 순간을 전했다. 로랑 누네즈 프랑스 내무 차관은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불과 싸우기 위해 탑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빌딩을 구해냈다”고 칭찬했다. 소방관들이 북쪽 탑에 투입된 30분은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오후 11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현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처음 발표했다. 가브리엘 플러스 파리 소방대 대변인은 “우리는 지붕이 일부 부서진 걸 깨닫고는 두 개의 탑에 불을 붙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2년 전부터 파리 소방대에 배치 중인 콜로수스(Colossus) 이름의 로봇도 투입됐다. 카메라가 장착된 탱크 모양의 이 로봇은 소방대원이 접근하기에 위험한 독성 가스가 나오거나 땅이 험한 곳에서도 물을 뿌려 돕는 역할을 한다. 내부 온도와 지형 등 현장 정보를 카메라로 찍어 전송해주기도 했다. 내부 열을 파악하기 위해 항공 드론도 띄웠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해 로봇 증대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 매뉴얼과 훈련의 위력

프랑스는 유물 보호를 위해 번호를 매겨 화재 발생시 외부 반출 우선순위를 정해놓는 ‘이머전시(비상) 매뉴얼’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된 것도 바로 이런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훈련이 빛을 발한 결과이다.

화재가 발생한 직후 문화재 관리 부처와 파리시 문화재담당자 100여 명이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소방당국과 함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논의를 거듭하며 진화작업을 벌인 것도 눈길을 끈다.

대성당 화재로 쓰러진 93미터 첨탑 끝부분에 장식됐던 청동 수탉 조각상이 화재 폐기물에서 극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폐허 더미를 뒤지던 자크 샤뉘(Jacques Chanut) 프랑스 건축연맹 대표의 노력 적분이었다. 대성당의 상징인 마스터 오르간도 무사했다.

가브리엘 플러스 대변인은 “우리는 계획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성당을 알고 있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 대규모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훈련도 진행했다. 유물과 성화 등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화재에 투입된 소방관 500명 중 100명을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배치한 건 이런 훈련의 덕택이었다.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외부에서 헬기나 외부 호스로 끄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내부로 진입해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 역시 훈련의 결과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라는 문화적 충격 속에서 드러난 프랑스 당국의 문화재 보호 노력은 왜 프랑스가 문화 강국인지를 잘 보여준 셈이다.

파리=동정민특파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