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치켜세운 푸틴… ‘차르 본색’ 드러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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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 열흘이 지나면서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대통령 당시 집회 시위를 일부 보장해 주는 등 정치적 개방의 봄볕을 쬐는 듯했던 러시아 사회가 다시 폐쇄적인 권위주의 통치 아래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6일 오전, 방패를 앞세운 무장 경찰들이 모스크바 공원을 에워쌌다. 경찰들은 공원에서 수일째 ‘푸틴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거농성을 벌이던 시위대를 끌어냈다. 이날 정오까지 시위자들을 해산시키라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낸 경찰은 오전 5시 시위대 캠프를 덮쳐 20여 명을 연행했다.

푸틴이 공권력으로 반대 세력을 누르며 내부 단속에 나서겠다는 신호는 취임 전날부터 감지됐다. 경찰은 6일 크렘린궁 인근 ‘볼로트나야 광장’에서 수백 명의 푸틴 반대 시위 대원을 체포한 데 이어 이후 수일 동안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가두시위에서 700여 명을 연행했다. 지난해 말 푸틴의 대권 도전 선언 이후 올 3월 선거일까지 계속돼온 푸틴 재집권 반대 시위와 풍자 퍼포먼스에 대해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러시아 의회도 18일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시위에 참가할 경우 최대 3만 달러(약 3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하는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크렘린은 폭력을 동반한 집회 주동자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 개정을 구상 중이라고 시사주간지 타임이 보도했다.

푸틴은 또 18일 대선 운동 기간에 푸틴 지지 운동을 벌인 우랄지역 니즈니타길 시 방산업체 ‘우랄바곤자보드’의 조립라인 작업반장 이고리 홀만스키흐 씨를 우랄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로 전격 임명했다. 대통령 전권대표는 2000년 푸틴이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을 7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에 파견한 자신의 대리인으로 장관에 버금가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내부 단속을 발판으로 푸틴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외교 무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푸틴 대통령 대신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미국을 방문한 메드베데프 총리가 최근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외교원칙”이라고 선언하는 등 러시아에서 지난해 대선 기간 팽배했던 반미 수사법이 완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행정부는 대미 정책의 방향을 ‘반미는 아니지만 미국에 끌려가지도 않겠다’는 쪽으로 잡아가는 모양새다. 러시아 일간 모스코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G8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것에 대해 “미국 위주의 국제회의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거친 남자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은 31일 인접국 벨라루스를 방문한 뒤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를 방문한다. 다음 달 3일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을 방문하는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다. 외교 전문가들은 “푸틴이 옛 소련국가와 유럽, 아시아를 다니며 집권 기간 내내 자신의 편이 될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푸틴#차르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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