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알카에다 급팽창… ‘테러 빅리그’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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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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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지부 창설 300여명 암약… 잡지 펴내 ‘폭탄 제조법’ 전파도
서방 젊은이들까지 속속 가담… 美예산-인원 늘리며 일전 예고

‘테러의 축(the Axis of Terror)이 두꺼워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예멘발 미국행 화물기의 폭탄테러 음모가 적발되자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런 분석과 함께 예멘을 새로운 글로벌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수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예멘이 테러리즘의 ‘빅 리그’에 새로 진입했다는 것. 뉴욕타임스와 텔레그래프 같은 외신도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새 근거지로 부상한 예멘에 경고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 “예멘은 제2의 아프가니스탄”

아라비아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예멘은 오사마 빈라덴 집안이 대대로 뿌리를 내린 곳. 내전으로 인한 사회 불안 속에 1990년대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와 납치 사건이 이어졌다. 2006년 예멘 수도 사나의 감옥에 갇혀 있던 알카에다 조직원 23명이 집단으로 감옥을 탈출한 뒤 국내 테러단체에 속속 가담하면서 그 힘은 눈에 띄게 세졌다. 탈옥자 중에는 예멘의 아덴 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구축함 ‘콜’ 폭파사건의 주범도 포함돼 있었다.

2009년 초 빈라덴의 부하였던 나세르 압둘 카림 알 우하쉬가 알카에다의 지부인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를 창설하면서 예멘은 본격적인 테러의 기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300여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AQAP는 최근 벌어진 각종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 2009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 수장을 겨냥한 사무실 폭탄테러, 같은 해 성탄절 연휴에 발생한 미 노스웨스트 항공사 테러 모의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 예멘 내에서도 사나에서 팀 톨롯 주예멘 영국대사가 공격당하는 등 서방 외교관을 상대로 한 공격이 이어졌다.

AQAP는 영문 잡지와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선전 선동에도 적극적이다. 10대 잡지처럼 감각적으로 제작되는 영문 잡지 ‘인스파이어(Inspire)’에는 ‘엄마의 부엌에서 폭탄을 만드는 법’ 같은 기사가 버젓이 실려 있다.

○ 세력 확대하는 예멘의 테러조직

최근에는 서방의 젊은이들도 예멘의 테러조직에 잇따라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경우 무슬림 8000여 명이 매년 이슬람 공부를 목적으로 예멘을 찾는데 이 중 일부가 테러 교육을 받고 오는 것으로 영국 해외정보국(MI6)은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한 미국인 사미르 칸은 “미국을 배신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글을 AQAP의 잡지에 올린 뒤 예멘으로 떠났다. 스웨덴 국립국방대의 연구에 따르면 최소 70명의 독일인, 30명의 영국인이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에서 AQAP 조직원을 지도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온 미국과 유럽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을 벌이는 사이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했던 아라비아반도에서 새 세력이 힘을 키워 왔다는 점이 확인된 것. 파키스탄 접경지역의 소탕전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 이 지역에서 시도된 글로벌 테러사건의 비율은 5년 전 90%에서 현재 50%까지 떨어진 상태. 하지만 이런 성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알카에다가 예멘에 새로운 본거지를 틀고 부활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국 안보 관계자는 “AQAP는 파키스탄 북부에 근거지를 준 기존의 알카에다에 견줄 중대한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며 “서방을 공격할 테러 모의 능력이 정교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테러의 밑거름 없애야”

미국은 예멘 정부와의 공조하에 예멘의 대(對)알카에다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예멘으로 파견한 군사전문가를 지난해의 두 배인 50여 명으로 늘렸고, 예멘에 파견하는 CIA 요원도 확충했다. 미 정부는 헬리콥터 비행기 및 대테러 장비 구입을 위해 예멘에 1억50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미국은 예멘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개발 원조에도 비슷한 금액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빈곤과 문맹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테러 발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 예멘은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국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달 3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알카에다라는 암세포를 제거해야 한다”며 공조 의사를 밝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美태생 성직자 아울라키 배후로 지목 ▼
인터넷 설교로 테러리스트 양성… 2006년 예멘서 체포됐다 풀려나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예멘발(發) 항공화물 폭탄 테러기도 사건의 배후로 미국 태생의 급진적인 이슬람 성직자인 안와르 아울라키(사진)를 거론하고 있다.

1971년 미국 서남부 뉴멕시코에서 태어난 아울라키는 최근 10년간 설교와 저술, e메일 등을 통해 이른바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면서 미국과 미군,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폭력적인 지하드(성전)를 지휘해 온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올 5월 뉴욕 타임스스퀘어 폭탄테러 미수사건의 범인 파이살 샤자드는 “지하드를 촉구하는 그(아울라키)의 인터넷 설교에 감명을 받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고 자백했다. 또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미국행 여객기 테러 기도 사건의 범인 우마르 압둘무탈랍도 아울라키의 인터넷 설교에 포섭됐다. 한 달 전인 같은 해 11월 텍사스 포트후드 미군기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니달 하산 소령은 아울라키와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테러 계획에 확신을 얻었다고 자백했다. 9·11 테러범 3명도 아울라키의 설교를 들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30일 아울라키가 2006년 테러 모의 혐의로 예멘 수사 당국에 체포됐다가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를 거쳐 풀려난 뒤 테러 공격의 배후조종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보 당국은 그가 예멘의 알카에다 지부인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의 핵심 구성원이라고 확인했다. AQAP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아랍 국가들의 요원 수백 명을 총괄하는 단체로 예멘 정부의 치안력이 미치지 않는 수도 사나 동쪽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한편 지난해 1월 미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아울라키 등 예멘의 알카에다 수뇌부 5명을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보도했다. 곧 미 정부는 중앙정보부(CIA)를 통해 미국 시민권자로서는 처음으로 아울라키에 대한 살인명령을 허가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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