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누리꾼 넷셔널리즘 ‘막말 삼국지’

  • 입력 2008년 3월 21일 20시 34분


인터넷 민족주의 막가는 비방전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훌륭하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가 무엇이 나쁜가? 너희들의 조상이 병합을 부탁한 것이다." (일본 누리꾼)

¤댓글: "그럼 니들이 미국의 식민지가 되든가." (한국 누리꾼)

¤댓글: "미국>일본 >>>>>>>> 미개한 조선." (일본 누리꾼)

¤댓글: "이게 일본인의 현재 수준이다. 자기 나라에 먹칠 그만해라." (한국 누리꾼) 》

쪽바리 짱꼴라 가오리빵즈…

상대국민 비하하는 욕설 글

포털-블로그 타고 급속 확산

“국가간 교류-외교에 악영향”

한국과 일본 누리꾼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네이버 인조이재팬'의 게시판에 20일 올라온 글의 일부다. 실시간 자동번역 기능을 갖춘 이 게시판에는 양국 누리꾼이 서로 헐뜯으며 설전을 벌이는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백 건 씩 이어진다.

인터넷으로 각국 누리꾼이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상대방 국가를 비하하거나 자국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넷셔널리즘'(인터넷의 net과 민족주의를 뜻하는 nationalism의 합성어)이 떠오르고 있다.

▽'쪽바리' '짱꼬라'… 막말 가득=일본 사이트 '니찬네루'(2ch)의 동아시아 뉴스 게시판은 중일 만두파동이나 티베트 사태 등과 관련해 중국을 폄하하는 글로 가득하다. '베이징에서 폭동이 일어나 다같이 죽어라' 같은 막말도 눈에 띈다.

톈야(天涯)를 비롯한 중국 커뮤니티 사이트엔 최근 베이징올림픽 한국과 대만 야구 최종예선전 도중 대만 관중들이 한국을 비하하는 피켓을 든 것에 대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중일 인터넷엔 '쪽바리(한국인이 일본인을 폄하하는 말)' '가오리빵즈(중국인이 한국인 폄하)' '짱꼬라(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중국인 폄하)' 등 오프라인에선 함부로 쓸 수 없는 비속어가 난무한다.

한국과 일본에는 반일, 반중, 혐한을 주제로 한 인터넷 사이트도 여럿이다. 네이버와 다음엔 '안티 일본' 카페가 각각 30~40여 개에 달한다. 회원수가 무려 5600여 명인 곳도 있다.

일본 사이트 2ch엔 혐한자료 전용 게시판인 '니다'가 운영되고 있다. 동아시아 뉴스 게시판에도 한국과 관련된 부정적 뉴스를 번역한 자료가 매일 게재된다. 이 같은 각종 익명 게시판은 폐쇄적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면서 '넷 우익'들이 혐한론과 혐중론을 퍼뜨리는 주요 수단으로 떠올랐다.

정부의 규제에 따라 노골적인 반한, 반일사이트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에서도 포털사이트와 개인 블로그를 중심으로 넷셔널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중국 누리꾼이 블로그에 게재한 '혐한랩' 동영상이 중국 내에 널리 유포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넷셔널리즘의 원인과 전망=전문가들은 넷셔널리즘 번성의 이유로 인터넷의 익명성과 집단성을 들었다. 소수의 누리꾼이 만든 비방 자료가 인터넷에서 대중에게 널리 전달되고 자동번역 기술의 발달로 해외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한류열풍이나 한일 월드컵, 중국경제의 부상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넷셔널리즘이 떠오르는 이유다. 국내 중국인 유학생들의 동호회 사이트에 반한(反韓) 게시물이 유난히 많은 점은 넷셔널리즘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재생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가 늘면서 한중일 넷셔널리즘은 특히 국가간 교류와 외교에까지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의 2ch는 하루 접속 건수가 2억 회에 달한다.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올해 2억2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숙명여대 안민호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미국 위키피디아는 인종과 성별 등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자료를 자체적으로 규제한다"며 한중일 정부와 인터넷 업계가 넷셔널리즘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사회-경제적 불안이 내셔널리즘 불러 소수의 인터넷 여론 너무 신뢰 말아야”

다카하라 日학술진흥회 연구원

"세계화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사람들을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사회적 유동화' 속에서 그 불안감이 내셔널리즘으로 귀착되고 있는 것이죠."

다카하라 모토아키(高原基彰·31)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은 19일 "세 나라 젊은이들의 내셔널리즘에는 공통의 뿌리가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그는 세계화에 따른 한중일 3국의 사회변화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중국 옌지(延吉)를 여행 중인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가졌다.

세계화 바람으로 일본 사회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부터 급격히 신자유주의적 노사관계로 전환하면서 주로 젊은 세대가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그는 "격한 시장경쟁과 양극화 속에서 그들은 중간층이 될 수 없다는 원한이나 불안감을 안게 됐다"며 "이런 불만이 역사문제 등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반발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일종의 '울분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의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을 접할 때는 '바보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고 여기며 무시할 것을 제안한다. 유럽의 내셔널리즘이 실업문제로 인한 이민자 배척 감정으로 이어지듯 한중일 내셔널리즘도 외교적 차원이 아닌 국내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던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발언 공간을 얻게 됐습니다. 일종의 '소수파 의식'을 가진 그들은 주류 의견보다는 좀더 자극적인 발언을 하고 싶어 하죠."

따라서 그는 "인터넷 여론을 너무 신뢰해서도 안 된다"며 "인터넷에서 다수로 보이는 의견이 실제로는 '목소리 큰 소수파'의 의견인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는 청년실업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내셔널리즘 바람이 시들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인터넷과 매스컴이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며 "포털사이트 게시판 내용이 그대로 뉴스화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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