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30년]<4>지지부진한 정치개혁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6분


“단결해야 번영” 중국 윈난 성의 샹그리라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도로변에 역대 지도자들의 초상이 담긴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부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사진 옆에는 ‘단결해야 공동의 번영과 발전이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샹그리라=하종대 특파원
“단결해야 번영” 중국 윈난 성의 샹그리라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도로변에 역대 지도자들의 초상이 담긴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부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사진 옆에는 ‘단결해야 공동의 번영과 발전이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샹그리라=하종대 특파원
위커핑 중국 공산당 편역국 부국장의 저서 ‘민주는 좋은 것’(왼쪽)과 장웨이웨이 스위스 제네바 웹스터대 교수가 환추시보에 기고한 ‘좋은 민주여야 좋은 것’(오른쪽). 위 부국장은 “민주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 교수는 “1인 1표(에 의한 직접선거)는 중산층이 형성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이에 맞섰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위커핑 중국 공산당 편역국 부국장의 저서 ‘민주는 좋은 것’(왼쪽)과 장웨이웨이 스위스 제네바 웹스터대 교수가 환추시보에 기고한 ‘좋은 민주여야 좋은 것’(오른쪽). 위 부국장은 “민주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 교수는 “1인 1표(에 의한 직접선거)는 중산층이 형성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이에 맞섰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긁어부스럼 만들라”… 정치민주화는 ‘만만디’

《“좋은 민주라야 좋은 것이지, 저열한 민주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지난주 중국 환추(環球)시보에는 의미심장한 글이 실렸다. 푸단(復旦)대 겸임교수이자 칭화(淸華)대 특별초빙연구원인 장웨이웨이(張維爲) 스위스 제네바 웹스터대 국제관계학원 교수가 ‘좋은 민주라야 비로소 좋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환추시보는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人民)일보의 국제시사 자매지로 중국 정부가 외국 매체의 주장을 반박할 때 주로 활용하는 매체다. 따라서 이 글엔 중국 지도부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장 교수의 기고문은 2006년 말 위커핑(兪可平) 중국 공산당 편역(編譯)국 부국장이 쓴 ‘민주는 좋은 것’이라는 글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언젠가는 맞이할 정치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중국의 고민을 두 학자의 논전이 웅변하고 있다.》

- [중국 개혁-개방 30년]<1>세계 중심국가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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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개혁-개방 30년]<4>지지부진한 정치개혁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30년에 가깝지만 질적 도약을 맞고 있는 경제 분야와 달리 정치 분야의 개혁은 구체적인 청사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지지부진한 개혁을 계속 늦추다가는 어느 순간 민중의 목소리가 폭발해 ‘새로운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 격화되는 학계의 사투(思鬪·사상투쟁)

2006년 말 발표한 ‘민주는 좋은 것’에서 위 부국장은 “민주란 정국 불안정을 초래하고 행정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며 “법제도가 훼손되고 사회질서가 어지러워질 수 있지만 이는 민주 자체의 허물이 아니라 정치가의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주주의를 실행해야 한다는 혁명적인 발상이 담겼다는 점에서 당시 그의 주장은 중국 정계와 학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이를 반박한 지난주 환추시보 기고에서 장 교수는 “케냐와 필리핀 그루지야에도 민주주의가 있지만 국민이 갈망하는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는커녕 사회불안만 계속되고 있다”면서 “1인 1표(에 의한 직접선거)는 경제적 여유와 교육이 뒷받침된 중산층이 형성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2020년이 돼야 비로소 중산층이 다수가 된다”고 지적했다. 중산층이 다수가 되기 전에는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해도 사회불안만 야기할 뿐 정치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다.

○ 민주화 원칙엔 찬성, 방향은 제각각

중국이 궁극적으로 민주화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는 현재 중국의 학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저마다의 답안은 제각각이다. 학자들의 흐름은 크게 신좌파의 순수 공동체주의 주장, 민주사회주의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 공동체주의를 위주로 자유주의를 가미해야 한다는 주장, 자유주의를 위주로 공동체주의를 가미해야 한다는 주장 등 4가지로 요약된다.

순수 공동체주의 지향의 신좌파는 시장경제 자체를 부인하고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가자는 부류로 마빈(馬賓) 전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고문 등이 핵심인물이다. 이들은 빈부격차와 부패 환경오염 등이 모두 개혁개방에서 비롯된 만큼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셰타오(謝韜) 전 런민대 부총장 등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부류는 폭력혁명을 부인하고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만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여긴다.

가장 많은 학자의 지지를 받는 부류는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혼합형으로 위 부국장과 톈지윈(田紀雲) 전 부총리 등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 학자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는 공동체주의가, 미국은 자유주의가 강조된 정치제체로 보고 있다.

○ 눈 뜨는 민중… ‘자유 확대하라’

학자들 사이에서 이같이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최근엔 민중 사이에서도 민주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3일부터 열린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협회의)를 앞두고 1만1090명의 노동자 농민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인민이 직접 당과 국가의 간부를 감독하는 ‘공민감정회(公民監政會)’를 설치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요즘 관리 중 탐관오리가 아닌 자가 거의 없다”며 “인민이 직접 감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산당까지 감독하는 상위 기관을 두자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공개서한을 통한 민중의 문제 제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1만2150명의 민중이 공산당 지도부에 민주개혁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 중국 정계를 뒤흔들었다.

이들은 서한에서 “정치제제를 개혁하고 표현 및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2000년 4만 건에 불과하던 집단소요 사건도 5년 만에 2배가 넘는 8만7000건으로 증가하는 등 서민층의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다.

○ 지도부도 결론 못 낸 채 고민 중

후 주석 지도부는 최근 전문가들로부터 정치개혁보고서를 제출받고 정치개혁을 위한 물밑작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청사진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정치개혁과 관련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할 뿐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발전과 사회주의 정치문명,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아직 중국 지도부도 정치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결론짓지 못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정치개혁은 앞으로도 정치 민주화보다 행정 조직과 인사 제도 등 정치제도 개혁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며 “빠른 경제 성장과 사회의 안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중국은 상당 기간 정치 민주화를 뒤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중국의 바람직한 정치개혁 방향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
구분주요 내용주요 인사예시 국가
순공동체주의(계획경제 시대 사회주의)공유제, 계획경제 주장. 개혁 개방 전면 거부마빈 전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고문 리청루이 전 국가통계국장개혁 개방 이전의 중국
민주사회주의공유제 거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주장. 복지국가 지향셰타오 전 런민대 부총장스웨덴
공동체주의 위주 자유주의 가미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가 근간. 개인보다 사회공동체 및 복지 중시조호길 중앙당교 교수위커핑 공산당 중앙편역국 부국장영국 프랑스 독일
자유주의 위주 공동체주의 가미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가 핵심. 개인 능력 중시톈지윈 전 부총리미국

▼중앙당교 조호길 교수 “중산층 절반 넘을 2020년쯤 돼야 민주화 가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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