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에너지 비상?

  • 입력 200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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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위주 석유정책… 고유가에 내수 공급 줄어

“산유국 국민이라고 해도 고유가에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일 오후 9시 모스크바 남부 가리발디 거리에 산책 나온 아나스티야 그루조바(65·여) 씨는 가로등이 절반만 켜진 거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석유 값이 올라간 뒤 밤거리가 어두워졌고 서민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 그루조바 씨의 푸념이었다.

러시아 당국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뒤 비산유국 못지않은 비상조치에 돌입했다.

빅토르 흐리스텐코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날 석유회사 사장들과 만나 석유 가격 상한제 도입을 논의했다.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으면 가격을 자동 동결하는 비상조치로, 승용차 이용자와 농어민의 생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는 러시아 시장에서 휘발유 값이 급등했던 2005년 10월에도 검토된 바 있다.

전기회사들은 비상 연료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러시아 최대 전기회사인 국영 통합전력시스템(UES)은 해외로 수출되는 천연가스 일부를 난방용 연료로 비축했다고 20일 밝혔다.

산유국 러시아에 오일머니가 유입돼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지만 만성적인 전력 부족 사태는 지금껏 해결되지 않았다. UES는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 인접 국가에서 올해 50억 kW의 전기를 수입했으나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에너지 전문가인 이반 흐로무신 가스프롬은행 애널리스트는 “주요 산유국이라면서 유가 90달러 시대에 ‘가로등 절반 켜기’에 나선 것은 산업용 전기가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석유와 가스에 대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 때문에 유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마다 에너지 공급 부족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러시아 송유관 회사인 트란스네프티의 추산에 따르면 10월 러시아의 석유수출은 전달에 비해 10%가량 늘었다. 그러나 석유회사의 수출 드라이브가 이어지면서 내수용 석유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가스와 물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은 한계에 도달했다. 지난해 내수용 천연가스의 39%는 전력 생산용으로, 18%는 지역난방용 연료로 공급됐다. 산업용으로 쓰인 천연가스는 16%에 불과했다.

모스크바 시는 겨울철을 맞아 난방용 에너지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가정용 전기를 절약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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