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대학살 70주년 맞는 난징

  • 입력 2007년 7월 3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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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추’(대표 손진책)가 중국에 수출한 마당극 ‘삼국지·오(吳)’를 오나라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에서 관람했다. 그 도시에 간 김에 국민당 정부가 남긴 유적과 난징학살기념관을 둘러보았다. 1927∼37년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에는 장제스(蔣介石)의 총통부, 쑨원(孫文)의 무덤인 중산릉(中山陵) 같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 중산릉에 새겨진 ‘國民黨’ 글씨와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는 문화대혁명의 홍위병 난동 때도 손상되지 않았다. 쑨원이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국부(國父)로 숭앙받기 때문이다.

大도살기념관 재개관 위해 공사중

난징에서는 학살 대신에 다투사(大屠殺·대도살)라고 부른다. 대도살기념관은 공사 중이었다. 1995년에 지은 건물을 헐고 새로 지어 올해 70주년 기념일(12월 23일)에 재개관한다. 정문에는 장쩌민(江澤民)이 글씨를 쓴 ‘전국청소년교육기지’라는 석판이 걸려 있었다. 경비원은 “전시물을 포장해 보관하고 있다. 12월 23일 이후에 와서 보라”고 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점령한 일본군은 국민당 정부가 포기한 난징을 12월 22일 함락했다. 다음 날부터 일본군은 광기를 내뿜으며 시민 30만 명을 도륙했다. 난징에서는 매년 그날이면 사이렌이 울리고 전 시민이 머리를 숙여 사망자들을 애도한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같은 일본 우익들은 “난징 학살은 중국인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계 미국인 여성 아이리스 장이 쓴 ‘난징의 강간: 2차 대전의 잊혀진 홀로코스트’에는 일본군의 대도살을 고발하는 목격자, 사진과 기록이 수두룩하다. 일본군은 비무장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목 베기 경쟁을 벌이고 신병들의 담력을 키우기 위한 총검술 표적으로 삼았다. 산 채로 매장하기와 불태우기 같은 인종청소가 벌어졌다. 여성 2만 명 이상이 강간 살해당했고, 능욕한 여성의 외설 사진을 찍어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다니다 패전 후 포로가 되면서 압류당한 병사들도 있다.

필자는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다카우 나치 강제수용소를 살펴본 적이 있다. 수용소 근처에서 영어를 잘하는 독일인들에게 수용소 위치를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어렵게 찾아갔다. 유대인 학살의 현장인 다카우 수용소가 외국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시설은 아니겠지만 독일은 자국 내에 그런 시설을 보존함으로써 인류에게 사죄하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난징의 택시 운전사는 필자에게 “일본 사람같이 보인다. 외모만 보아서는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들은 싫다. 대도살은 너무 심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망언이 나올 때마다 난징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일본군은 난징 점령 직후부터 중국 여인들을 붙잡아 낮에는 세탁부, 밤에는 성노예로 부렸다. 난징의 강간으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일본 정부와 군부는 젊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결할 성노예 시설을 고안해 1938년 난징 근처에 첫 위안소를 냈다. 일본 병사들이 ‘공중변소’라고 부른 강간센터였다.

일본인에 수치심 안길 영화 ‘난징’

중국은 올해 난징대도살 7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빌 구텐타그, 댄 스턴 감독이 찍은 영화 ‘난징’이 이달부터 중국에서 개봉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 스트립, 장쯔이와 양쯔충이 출연하는 미국 영국 중국 3국의 합작 영화는 올해 말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난징에서 수많은 시민을 구해 낸 독일인 나치스 당원의 실화는 ‘쉰들러 리스트’보다도 감동적이다.

일본은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홍보 및 로비전을 벌이며 총칼로 짓밟은 여성들에 대해 ‘돈벌이를 한 고급 창녀’라고 다시 모욕했다. 70주년을 맞는 ‘난징의 강간’은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거짓 변명을 늘어놓은 일본인들에게 수치심을 안겨 줄 것이다. 난징 학살과 위안부라는 이름의 성노예는 ‘잊혀진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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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11월 24일
쪽수 : 351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95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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