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사는 윤명숙 씨는 3년 전 막내아들 제임스가 ‘바늘구멍’을 뚫고 웨스트포인트에 합격하자 기쁨과 걱정이 교차했다. 영재학교인 휘트니고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아들을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 8개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더구나 웨스트포인트는 이라크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을 치러 온 미국의 직업군인을 만드는 코스라는 점에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학교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국가(미국)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결국 윤 씨 부부는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얘기하려면 그만한 밑바탕이 있어야 한다”며 아들을 격려했다.
실제로 아들이 웨스트포인트 생도가 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남달랐다. 이웃의 백인 주민들은 동네의 자랑이라고 기뻐해 줬고 한 주민은 경례를 붙여 주기까지 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사관학교 진학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소위로 임관한 978명 가운데 무려 35명이 한국계였다. 이 중엔 한국에서 태어난 2명도 포함된다. 해사에서도 15명의 한국계 장교가 배출됐다.
7일 웨스트포인트 측이 본보 요청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계 신입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10∼15명 안팎이던 한국계 신입생이 2000년대 들어서는 30, 40명대로 늘어났다. 이라크전쟁의 영향 탓인지 2004년엔 25명으로 줄었으나 이후 다시 크게 늘고 있다. 한인 2세들의 사관학교 진학은 예전엔 자녀의 주류 사회 진입을 바라는 부모들의 권유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선 계급으로 승부하는 사관학교가 최고”라며 아버지가 중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준비시킨 사례(웨스트포인트 생도 J 씨)도 있다.
그러나 요즘엔 학생 스스로 사관학교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민 초기의 경제적 불안정을 벗어나면서 단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보다 ‘국가에의 봉사’ 쪽을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학비가 없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대형 로펌인 애킨검프의 파트너인 김석한 변호사는 “유대인 이민사를 보아도 이민 초기에는 사업으로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닦은 뒤 자녀 세대는 모두 의사와 변호사를 만들려고 했다”며 “한인 사회도 아직은 이 같은 경향이 여전하지만 군이나 문화 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인 전문가 그룹이 형성되면 모국인 한국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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