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아베의 공물(供物)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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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물을 바쳤는지, 안 바쳤는지 밝히지 않겠다. 말하면 외교문제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21∼23일 야스쿠니 신사 춘계 대제 때 비쭈기나무 화분을 공물(供物)로 보낸 게 맞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본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애매(曖昧·아이마이) 전술’ 바로 그거다. 그는 지난해 4월 야스쿠니 신사에 몰래 참배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도 “갔다고도, 가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않겠다”는 답변으로 궁지를 피해 갔다.

▷아이마이 전술은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와 혼네(本音·속마음)를 적당히 버무려 상대측이 직공(直攻)하기 어렵도록 하려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공물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일본 내 보수파에게선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평가받고,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도 피해 가려는 ‘꼼수’의 산물이다. 군위안부의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과 사죄를 회피해 온 골수 보수파답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차라리 솔직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중국과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해 아시아 중시 외교를 펼칠 것처럼 처신했다. 그러나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는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이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는 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사과를 표명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혀 놓고 뒤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몰래 바친 것이다. 군 위안부 문제는 외면한 채 북한의 일본인 납치만 문제 삼는 것도 이중 잣대의 위선이다.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 총리와 같은 세습 정치인이지만 겉과 속이 비슷한 스타일로 평가된다. 반면에 아베 총리는 겉은 솜 같지만 속은 쇳덩어리인 ‘면철(綿鐵) 스타일’이란 말을 들을 만큼 표리부동한 정치인이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도 더 지나도록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있으니 일본이 경제 규모에 어울리는 대국으로 대접받을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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