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하루키가 번역했으니까…” ‘그레이트 개츠비’ 불티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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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그가 권하는 책이라면 일단 한번 읽어보고 싶은 걸까.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57) 씨. 10일 그가 일본어로 번역해 발간한 미국 문학의 걸작 ‘그레이트 개츠비’(주오고론·中央公論)가 벌써 11만 부 넘게 판매되며 붐을 일으키고 있다.

1925년 스콧 피츠제럴드가 28세 때 발표한 이 작품을 무라카미 씨는 평소에도 ‘가장 소중한 책’이라며 절찬해 왔다. 번역본 후기에 “무조건 한 권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개츠비’를 꼽겠다”고 적었을 정도다.

‘그레이트 개츠비’는 부자들이 모이는 1920년대 미국 뉴욕 교외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는 개츠비가 과거의 연인과 재회하는 정경을 그린 작품으로 ‘광란의 20년대’ 미국의 영광과 허무감이 교차하는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무라카미 씨가 이 소설을 만난 때는 고교 시절. 작가 피츠제럴드에게 깊이 마음이 끌려 “긴 세월에 걸쳐 마음을 통하며 경애해 왔다”고 한다.

무라카미 씨는 “60세가 되면 이 책을 번역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보다 빨리 책을 낸 이유를 그는 “버블 경제와 그 뒤의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현대 일본인들이 이 책을 실감하며 읽을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공황 이후 불황의 1930년대에 피츠제럴드도, 미국 사회도 성숙했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일본의 버블 경제와 그 파탄 이후 ‘잃어버린 10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 사회도 같은 단계를 거침으로써 성숙함을 이루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을 담았다.

그는 ‘단순 번역’ 이상으로 하고 싶어 자신의 소설에 사용하는 문장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번역문에 넣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3년 전에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캐처 인 더 라이’라는 원제 그대로 번역해 냈다. 이 책도 30만 부 이상 팔려 나갔고 “번역이 바뀌면 작품의 느낌도 이렇게 달라지나”라는 평을 받았다.

주오고론사 담당 편집자는 “평소 외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독자라도 무라카미 씨가 권하면 읽어 보려는 사람이 많다. 개츠비를 향한 무라카미 씨의 두드러진 애정이 독자에게도 전달된 것 아니겠는가”라고 인기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처럼 무라카미 씨는 일본에서 일종의 ‘현상’이자 ‘습관’이 되고 있다. 그 자신이나 그의 작품을 논하는 책만도 이미 수십 종이 발간돼 있다. 지난달 ‘무라카미 하루키는 습관이 된다’는 평론서를 낸 문예평론가 시미즈 요시노리(淸水良典) 씨는 “그의 작품에는 현대인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벽 속에서 자신다움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노벨 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일본 작가’로 꼽히며 전 세계에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간결한 언어와 표현을 이어 가면서 간단치 않은 현실을 그려내 읽기 쉬운데도 내용이 깊다. 마치 카프카와 같다”는 한 프랑스 편집자의 평가를 전했다.

정작 무라카미 씨는 익명성 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그는 10월 말 체코에서 열린 ‘프란츠 카프카상’ 시상식에서 ‘난생처음’으로 기자회견에 나서 “이렇게 많은 기자가 오다니! 다시는 기자회견은 하지 않게 될 것 같다”며 “나는 보통 사람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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