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철희]한국형 386 vs 일본형 386

  • 입력 2006년 10월 3일 03시 01분


코멘트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의 첫 전후세대 총리이다. 아베 시대는 전후세대가 주역이 되는 신세대 정치의 개막이다. 그가 내각을 짤 때도 노장청(老壯靑)의 조화라는 표현은 수식어에 불과했고, ‘세대교체’가 핵심어였다. 아베 총리를 보좌하는 최측근은 일본형 386세대이다. 386세대가 주역이 된 노무현 시대 한국 정치와 대칭적인 일본 정치 구도가 성립되고 있다.

일본의 전후세대 정치인은 고도성장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경제 대국 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1990년대에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세 가지 충격적인 경험으로 새로운 정치적 사고의 틀을 갖게 됐다. 하나는 걸프전의 충격이다. 일본은 130억 달러라는 거금을 걸프전에 쏟아 붓고도 국제사회에서 인적 공헌을 안 했다는 이유로 ‘수표 발행 외교’ 또는 ‘일국 평화주의’라고 비난받는 처지가 됐다.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인식이 이들 전후세대에게 다가왔다. 미국의 압력에 응해 돈을 냈는데도 미국마저 평가를 안 해 주는 일본 외교를 보면서 외압에 굴복하기보다는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전후세대 정치인이다. 반응형(reactive) 외교를 탈피해 자기주도형(proactive) 외교를 하자는 것이 아베의 ‘주장하는 외교’의 실체이다.

또 하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대표되는 역사 문제의 전면 부각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일본군위안부라는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속죄 요구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직격탄이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의 출발점은 수치심과 굴욕의 극복, 사죄 외교에서의 탈출이었다. 일본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과 역사 해석으로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자는 것은 아베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후세대 정치인이 공유한 또 하나의 슬픈 경험은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경제 불황의 도래이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가라앉는 시기에 중국이 급속도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아편전쟁 이후 150년간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위를 가졌던 일본인에게 강한 중국의 등장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욱일승천하던 시대엔 미국도 무섭지 않다던 일본에서 중국 위협론이 팽배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다.

한일 386세대를 비교해 보면 국가 전략의 착지점이 다를 뿐 인식과 사고의 구조가 비슷하다. 한국의 전후세대인 386은 일본의 386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모른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해 자신감이 강하다. 민주화를 자신들의 투쟁으로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국제화의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에 대한 자주 외교, 한국 방위의 한국화, 동북아에서의 균형 외교론, 몰락하는 말썽꾸러기 북한에 대한 포용론의 근저에는 386세대의 한국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이 깔려 있다.

한일 386세대가 공유한 자국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 회복 의식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자존심을 내건 체면 싸움에서는 서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들이 보기에 부당한 압력이면 굴복하기보다는 반발한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기에 앞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 그래서 민족주의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양국 386세대가 가지는 장점은 감성보다는 논리를, 불투명한 거래와 야합보다는 투명한 교환을, 일방적 양보보다는 대등한 협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약점이 전면에 드러나면 19세기형 갈등이 재연될 것이지만, 장점을 잘 활용하면 냉전기와는 다른 21세기형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도쿄에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일본정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