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군들 양지에 묻어줘서 감사” 日후손들 ‘보은의 방문’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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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당시 조선 수군에 대패한 일본 수군들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 준 전남 진도 주민들에게 일본인 후손들이 현지를 찾아와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보은(報恩)의 방문’이 이뤄진다.

4일 진도군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선과 일본 사이에 격렬한 해전이 벌어졌던 진도군 고군면 벽파진 일대의 일본 수군 시신 100여 구가 당시 이곳에 살던 주민들에 의해 수습돼 매장됐다는 사실이 최근 일본에 알려져 그 후손들이 15일 현지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문단은 일본 시코쿠(四國) 에히메(愛媛) 현 출신으로 정유재란에 참전한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의 후손을 비롯한 현창(顯彰)보존회 임원, 현지 대학생 등 20여 명으로 구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선조들이 묻힌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고, 적군의 주검까지 거두는 인간애를 실천한 조선인의 후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일본 수군 집단 매장 사실은 진도 향토사학자인 박주언(61) 씨가 고군면 내동리 주민 이기수(80) 씨의 증언을 듣고 2004년 ‘진도사람들’이라는 잡지에 기고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올 5월 진도를 방문한 히로시마슈도(廣島修道)대 히구마 다케요시(日외健壬) 교수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이번 후손 방문을 성사시킨 것.

왜군들이 묻힌 내동리 왜덕산은 ‘일본군에 덕을 베풀었다’는 뜻에서 ‘왜덕산(倭德山)’으로 명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일본 수군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의해 울돌목으로 유인됐으며 거센 물살에 휩쓸려 2000명 이상이 수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돌목의 진도 쪽 발진 기지였던 벽파진으로부터 3, 4km 떨어진 내동리 주민들이 조류에 떠내려 온 일본 수군의 주검을 수습해 가까운 언덕에 묻었다는 것이 현지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왜덕산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개간 등으로 일부가 사라졌고, 현재 잡초가 무성해 확인하긴 어렵지만 왜군의 묘 50여 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군 학예연구사 김미경(42) 씨는 “진도는 망자의 넋을 달래는 씻김굿을 비롯해 독특한 장례의식이 전해지는 섬”이라며 “비록 적이지만 일군의 시신을 수습해 준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김 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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