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에 갇힌 도시 테헤란… ‘변화의 불씨’는 못가둬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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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美대사관 ‘사탄 벽화’‘미국의 스파이 소굴’로 불리는 테헤란 시내 옛 미국대사관 외벽엔 성조기를 배경으로 사탄의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됐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옛 美대사관 ‘사탄 벽화’
‘미국의 스파이 소굴’로 불리는 테헤란 시내 옛 미국대사관 외벽엔 성조기를 배경으로 사탄의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됐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이란의 테헤란에서 만난 조승미 이란 한인회장(가운데) 가족. 아들 다니엘 파토비 씨와 내달 출산을 앞둔 며느리 마리아 씨와 함께했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이란의 테헤란에서 만난 조승미 이란 한인회장(가운데) 가족. 아들 다니엘 파토비 씨와 내달 출산을 앞둔 며느리 마리아 씨와 함께했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핵 개발을 포기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거부하고 “그 어떤 제재나 군사 공격에도 맞서겠다”며 도전적인 자세를 굽히지 않는 세계 최초의 이슬람공화국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3일부터 6일 동안 둘러보고 돌아왔다.》

“여기선 기자라고 하지 말라.” 입국을 한 차례 거부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입국할 수 있었던 기자에게 테헤란에서 만난 교민들의 첫마디는 바로 이 말이었다. 오랜 고립과 폐쇄에 익숙한 사회에서 ‘외국 기자’는 그저 달갑지 않은 방문객이었던 것이다.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어두운 국가’로 흔히 묘사되는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발전이 멈춘 듯한 정체된 사회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이란인들은 뭔가 새로운 변화에 대해 목말라 했다.

○정지된 도시, 테헤란

테헤란은 한때 인근 지역을 호령하던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 어떤 나라보다 먼저 서구화의 길을 걸었던 중동 최대 국가인 이란의 수도.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옛 팔레비 왕조의 궁전이나 박물관 안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테헤란은 20여 년간 정지된 도시였다. 도심 거리는 차선과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의 홍수로 무질서 속에서 북적거렸고 테헤란 바자(시장)는 호객과 흥정 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뭔가에 짓눌린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호메이니 국제공항과 지하철 2개 노선은 착공한 지 20여 년이 지난 최근에야 완공됐고 도심 곳곳에선 미완성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한때 ‘없는 게 없다’던 국영백화점은 오래전부터 폐점 상태였다.

테헤란에는 이슬람혁명의 그림자가 여전했다. 도심의 큰 건물 벽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이란-이라크 전쟁 ‘순교자’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미국의 스파이 소굴’로 이름 붙인 옛 미국대사관 자리 외벽엔 사탄의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중성의 사회

그러나 테헤란은 안으로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온몸을 휘감은 차도르 차림의 여인들로 대변되는 테헤란의 첫인상이 바뀌는 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 한 교민은 “테헤란은 이중성의 도시”라고 말했다.

이란의 주말인 5일 저녁. 테헤란 북쪽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고스’라는 부유한 동네의 대형 쇼핑몰 밀라드에는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소매가 짧은 밝은 색깔의 상의(망토)에 화려한 무늬의 스카프를 머리에 쓴 젊은 여성들이 남자 친구와 팔짱을 끼고 쇼핑을 즐겼다.

테헤란 시내 한국 수도의 이름을 딴 서울공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어두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손을 붙잡고 있었다.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원 바깥쪽 도로에 주차된 소형 승용차 안에서는 남녀가 얼굴을 바짝 맞대고 있었다.

이란에서 여성의 이슬람 의상(히잡) 착용은 의무 사항이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남녀의 혼전 데이트 역시 불법이다. 하지만 차도르 대신 좀 더 짧고 타이트한 망토 차림이 많아지고 있다. 당국의 집중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

이란의 젊은이들은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을 지배하는 성직자와 정치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알리’라는 30대 소규모 의류업체 사장은 “도대체 자기 팬(지지자)들만 확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팔레비 왕가의 여름궁전을 안내한 ‘모하메드’라는 청년은 “팔레비 왕가의 초대 레자 왕은 성격은 포악했지만 항상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평복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등 국민을 위해 노력한 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옛날의 왕정이 더 나았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통제와 감시로 유명한 사회에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의외였지만, 왕정국가가 대부분인 중동 내에서는 그나마 민주화된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테헤란 바자의 한 상인도 “핵 문제로 외국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장사가 안 된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전쟁나도 떠나긴 힘들어” 300여 한인들 걱정▼

핵 사태로 미국의 군사공격설이 난무하면서 이란의 한인사회도 적지 않게 술렁이고 있다. 이란 한인회 300여 명 중 대부분은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 주재원이지만 국제결혼을 통해 이란 사회에 뿌리를 내린 교민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여긴 조용한데 밖에서 난리법석이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승미(58) 이란 한인회장은 “나는 이란-이라크전쟁 8년 동안 양국 국경 근처였던 농장 바로 앞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도 보면서 버틴 사람”이라며 “전쟁이 나도 별로 두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한양대 무용과 출신의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1977년 서울대 농대 교환학생이었던 푸른 눈의 청년 알리 파토비 씨와 결혼해 이란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대기업 파견 주재원들은 요즘 본사에서 ‘향후 대처 계획’을 보내라는 주문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한 주재원은 “경제 제재, 핵시설 공습, 전면전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행동계획을 보냈지만 한 사람은 그래도 남아야 한다는 게 본사의 주문”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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