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아시아의 새로운 혁명

  • 입력 2005년 4월 13일 18시 16분


코멘트
아시아는 지금 혁명이 진행 중이다. 세계사의 변방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위해 용틀임하고 있다.

핵심 화두는 나라와 국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부국부민(富國富民). 피의 냄새가 묻어 있거나 생경한 구호가 들리지는 않는다. 러시아혁명이나 중국 문화혁명보다는 산업혁명에 가깝다.

20세기는 ‘증오와 분노의 시대’였다. 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베트남의 호찌민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네루가 이끈 인도도 유혈(流血)이 낭자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 색채가 짙었다. 하지만 지상천국의 환상은 거대한 빈곤과 환멸로 막을 내렸다.

요즘 아시아를 달구는 혁명은 다르다. 총칼이 아니라 산업과 교육현장, 피 대신 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실용(實用)이 축이다. 20세기 혁명가들이 타도하려 했던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새 흐름을 주도하는 동인(動因)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중국과 인도는 특히 눈여겨봐야 할 나라다. 풍부한 노동력과 가격경쟁력, 다시 불붙은 ‘상인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의 시장과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 영어권이라는 언어적 이점과 탄탄한 정보기술(IT) 및 생명공학기술(BT) 인력을 갖춘 인도. 세계 1, 2위의 인구대국 ‘친디아(China+India)’의 국가경쟁력 강화 노력과 최근 발표된 두 나라의 ‘전략적 동반관계’ 구축 합의는 21세기 국제질서를 뒤흔들 큰 변수다.

제조업에서 독보적 강점을 지닌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의 잠재력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도 미래를 향한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시아, 미래와 도전’ 시리즈를 준비하기 위해 각국을 찾았던 동아일보 취재팀은 아시아의 역동성을 곳곳에서 느꼈다.

물론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앞으로도 당분간 군사력과 경제력, 영어를 무기로 세계질서를 주도할 것 같다. 하지만 공산주의 몰락과 세계화 열풍으로 절정에 오른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는 아시아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서서히 약해지는 추세다.

옛날부터 서양이 동양을 앞섰다는 인식은 착각이다. 중국만 해도 그렇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당송(唐宋)시대 중국의 경제력은 전 세계의 30%나 됐습니다. 이 비율은 현재 미국의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죠. 하지만 명청(明淸) 시대를 거치면서 바깥문을 닫다가 국력이 추락했습니다.” 그 아시아가 개방과 경쟁을 21세기 국가전략으로 선택해 다시 뛰고 있다.

‘떠오르는 아시아’는 한국에 기회도, 위기도 될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을 육성하고 기업 활동의 꽃을 피우게 한다면 아시아 시장의 급성장은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원군(援軍)이 될 것이다. 반면 다른 나라들이 달려가는데 홀로 퇴행적이고 소모적 사고(思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맨다면 ‘아시아의 용’이 아니라 이무기로 추락할 위험성이 크다. 아시아의 새로운 혁명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