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로금리' 해제배경]경기 자율회복 자신감

  • 입력 2000년 8월 11일 23시 10분


일본은행이 제로금리정책을 해제한 것은 비정상적인 정책수단을 쓰지 않고도 경제가 자율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1999년 2월 일본은행이 도입한 제로금리정책은 무담보콜금리(익일물)를 사실상 0%로 유도하는 정책. 이 정책에 따라 기업들의 금리 부담이 대폭 줄어 설비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회복을 위한 ‘극약처방’인 제로금리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가계의 이자소득이 줄어들고 저축률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경제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日정부-외국선 강력반대▼

올 들어 일본은행은 그동안 디플레이션 우려가 없어졌고, 개인소비를 좌우하는 고용 소득환경도 나아졌다며 제로금리 해제를 주장했다. 특히 일본정부가 지난해 3월 부실 대형은행에 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할 당시에 팽배했던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이 거의 가라앉고 있는 것도 해제결정을 내리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때까지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제로금리정책이 해제되면 일본의 해외투자가 감소해 미국증시 등 세계금융시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해제를 반대했다.

일본은행은 그동안 정부에 종속돼 있다고 해서 ‘대장성 니혼바시(日本橋)지점’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으나 이번에 정부와 외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제로금리를 해제함으로써 모처럼 독립성을 과시했다.

▼"한국엔 큰 영향 없을것"▼

제로금리 포기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금리인상에 따라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95년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끌어내린 재할인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금융완화 정책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금융기관들도 제로금리 해제를 예상하고 사전대비를 해왔다. 실제로 제로금리 해제의 효과가 이미 시장에 반영된 탓인지 12일 엔화는 약세를 보였고, 도쿄 주가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금리상승이 엔고(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면 한국으로선 일본제품과 경합관계인 전자 자동차 조선 등의 업종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제로금리 해제로 일본의 내수시장이 식어 버리면 수출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이원형(李元炯) 주일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는 “일본 기업의 경제활동이 위축됨으로써 한국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한국에 대한 투자가 그리 활발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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