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부부간 살해는 괜찮고 삼촌은 곤란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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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만 나오고 스크린엔 못올리는 ‘영화 속 금기’

근친상간 장면을 담아 논란이 된 ‘뫼비우스’의 포스터. 김기덕 필름 제공
근친상간 장면을 담아 논란이 된 ‘뫼비우스’의 포스터. 김기덕 필름 제공
‘타 인종 간의 결혼, 성도착, 노출, 매춘, 출산 장면, 약물 남용….’

1927년 미국 영화제작배급협회가 발표한 ‘영화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의 목록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영화에서 ‘안 되는 것’의 범위는 크게 줄었다. 27일 개봉하는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는 의회 건물이 박살난다.

한국영화에서는 요즘 금기의 파괴가 논란이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는 근친상간을 담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지난달 개봉한 ‘콘돌은 날아간다’에는 신부의 정사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금기와 이를 깨려는 영화인들의 도전사를 짚어봤다.

○ 신부는 되고 스님은 안 된다?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백악관이 등장한다. 의회 건물도 폭격을 당한다. 소니픽처스 제공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백악관이 등장한다. 의회 건물도 폭격을 당한다. 소니픽처스 제공
할리우드와 달리 권력의 상징 파괴는 한국영화의 금기다. 백악관을 먼지로 만드는 ‘인디펜던스데이’ 같은 청와대 폭파 장면은 없었다. 안성기가 대통령으로 나온 ‘한반도’에서 정부청사가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 정도다. ‘부당거래’(2010년)라는 예외가 있었지만 검찰에 대한 신랄한 공격도 꺼린다. 한 제작자는 “검찰, 청와대 같은 소재는 다뤄봐야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아동 살해 장면은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의 공통된 금기.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년)은 성지루가 아이를 고층 아파트에서 던지는 장면으로 이 금기를 깨 파장을 일으켰다.

성적 표현에는 특히 금기가 많다. 미성년자 성범죄의 자세한 묘사는 금물이다. ‘돈크라이 마미’(2012년)는 청소년 성폭력을 선정적으로 묘사해 물의를 일으켰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년)도 이런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프랑스 영화 ‘돌이킬 수 없는’(2002년)은 지하도 성폭행 장면을 장시간 구체적으로 묘사해 논란을 빚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한 한국영화 ‘가시꽃’에는 윤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정지욱 평론가는 “성적 금기를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게 논란을 피하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는 조카 인디아가 삼촌을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영화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존속살해 등 패륜도 꺼리는 요소다. ‘공공의 적’(2008년)이 예외다. 다만 ‘해피엔드’(1999년)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처럼 부부간의 살해에는 관대한 편이다.

성직자나 종교를 다루는 것도 조심스럽다. ‘콘돌은 날아간다’는 신부의 정사 장면이 나오지만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다. ‘박쥐’(2009년)에서도 송강호는 뱀파이어이자 연애하는 신부다. 가톨릭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김지미가 삭발 출연한 ‘비구니’(1984년)는 비구니 스님들이 “우리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이유로 집단 혈서를 쓰며 항의해 제작이 중단됐다.

○ 표현의 수위는 어디까지?

영화계에서는 한국사회의 금기에 대한 규제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강성률 광운대 문화산업학부 교수는 “TV뉴스에는 이보다 더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여과 없이 나온다. ‘악마를 보았다’를 보며 모방할 성인은 없다. 성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잔인함과 폭력, 성적인 상상은 오히려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국가가 나서 금기를 정하고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고 했다.

반면 영화들의 선정적 의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요즘 성적 표현이 센 영화들은 대개 해외영화제와 상업적 성공을 겨냥한 작품들이다. 표현의 수위가 과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적다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이 이런 것들에 자극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이문원 문화평론가의 지적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표현의 수위#금기#제한상영가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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