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PIFF]한국영화의 기억 찾아 술집 횟집 누벼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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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다큐 찍는 정지영 감독

11일 부산 해운대에서 벌어진 한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정지영 영화감독(63 ·사진)이 갑자기 녹음기를 꺼냈다. 옆에 있던 허철 고려대 교수는 카메라를 들었다. 돌연 인터뷰 분위기로 변한 자리, 정 감독이 즉석 제안을 했다. “제게 질문을 해주세요.”

“감독님은 언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셨나요.”(기자)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봤어요. 당시 제게 영화는 오락의 수단에 불과했죠. 하지만 ‘오발탄’을 보고 나서 영화를 즐기는 걸 넘어 처음으로 영화를 ‘읽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해서 원작과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었고….”(정 감독)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남부군’ ‘하얀 전쟁’을 감독한 정 감독은 이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었다. ‘한국영화인들의 구술을 통해 정리한 한국영화의 역사’가 주제다. 배우 김아중이 인터뷰어로 출연하고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한 허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조교수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이들은 다큐멘터리의 서두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고자 가장 많은 영화인이 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해운대 횟집, 술집 등을 누비며 임권택 이충렬 이명세 이춘연 등 영화감독을 만났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며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사연을 털어놨고, 배우 안성기와 임권택 감독은 “영화인들이 진작 해야 할 일을 이제야 하게 됐다”며 정 감독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 감독은 관객들도 붙잡아 각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영화 이야기를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영화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사의 궤적을 좇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 정리도 중요해요. 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에 삶의 일부로 남은 한국영화의 조각을 모아보고 싶었어요. 나운규의 ‘아리랑’ 필름은 사라졌지만 영화에 얽힌 인물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정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늘 머릿속을 맴돈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이제야 묻고 답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한 다큐멘터리는 내년 상반기에 완성해 개봉한다.

부산=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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