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올 베를린영화제, "독일 영화 살리자" 노골적 움직임

  • 입력 2002년 2월 14일 17시 45분


17일(현지시간) 폐막하는 제52회 베를린 영화제는 올해의 목표로 ‘전통과 혁신’을 내걸었다. 반세기를 넘어선 이 영화제의 고민이 담겨 있는 캐치 프레이즈다.

베를린이 칸, 베니스와 같은 유명 관광지라는 장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색깔 덕분이다. 이 영화제는 본래 동독 한 가운데 포위되어 있는 서베를린을 서방 세계로 연결하는 창구 역할로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나중에는 역으로 동유럽에 서독을 소개하고 서유럽 문화의 수입 통로가 됐다.

독일과 유럽 영화의 프로모션 분야에서 일해온 디터 코슬릭이 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이 됐다. 변화하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독일 영화 산업을 국내외적으로 중흥시키는 임무를 맡은 그는 노골적으로 독일 영화 중흥을 위해 나섰다. 현지 언론에서는 ‘디터리즘’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그는 독일과 유럽영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3편의 경쟁작 중 15편이 유럽 영화였고 개막작도 독일 톰 티크베어 감독의 신작 ‘천국’(Heaven)이었다. 개최국 독일은 합작 영화1편을 포함 경쟁 부문에 5편을 진출시켜 ‘독일 영화 조망’이라는 특별 섹션을 설치했다. 경쟁작 중 할리우드 영화는 3편에 불과하고 그나마 이 영화도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서 벗어났다. 이 중 한편인 ‘몬스터스 볼’의 여주인공인 할 베리조차도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같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탈 할리우드’의 영향에 따라 베를린을 찾은 스타들도 적어 언론은 스포트라이트를 어디에 비춰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메이저 영화제의 단골 진출자인 중국 대만 이란의 영화는 한편도 경쟁 부문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빈 자리를 유럽 영화로 메웠을 뿐 세계 영화계의 역동적인 조류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경쟁 부문의 경향은 사회 문제의 원인을 정치 시스템에서 찾는 이데올로기적 순수주의나 할리우드 식의 상업적 영화 같은 선정주의에 기반한 작품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주인공들이 자신을 둘러싼 인간 관계나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지를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들이 주종을 이룬다. 대부분 잘 만들었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유사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시핑 뉴스'

지금까지 선보인 경쟁작에서는 프랑스 신예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8 Femmes)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영화 저널이 매일 매기는 별점의 평가도 가장 높았다. 카트린 드뇌브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이자벨 위페르가 푼수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스웨덴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스타 케빈 스페이시를 내세운 ‘시핑 뉴스’(Shipping News)로 수상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코슬릭 집행위원장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쟁 부문의 성격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지목해 눈길을 끌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지는 “최면을 거는 듯한 연기를 보여준 조재현이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베를리날레 저널’은 포럼 부문에 선보인 한국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감독 정재은)를 이례적으로 지목하면서 “재능 있는 데뷔작으로 국제 영화계에 나설 만한 수준을 갖췄다”고 평했다. ‘나쁜 남자’와 한일합작 ‘KT’(베를린에서는 일본 영화로 분류돼 있다)는 15, 16일 차례로 공식시사회 및 기자회견을 갖는다.

황금 곰상(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8개부문의 수상작 윤곽은 폐막일이 가까워져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는 음악부문에도 은곰상을 수여하기로 했으며 비경쟁부문 초청작까지 심사대상으로 삼는 데뷔작상도 신설됐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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