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TV읽기]MBC '결정! TV콜로세움' 어설픈 오락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잘 만든 토론 프로그램은 보는 재미가 오락 프로그램 못지 않다. 그러나 토론과 오락을 어설프게 접붙이려다 보면 둘 다 죽어버리고 만다. 열띤 공방의 결과를 순식간에 인터넷 투표에 붙이고, 인적 구성을 알 수 없는 가상의 네티즌이 판관(判官)이 되어 실제 상황에 대한 판결을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다수의 논리라지만, 이 정도면 죽은 솔로몬이 놀라서 살아 돌아올 일이다.

지난 일요일(12일) MBC ‘결정! TV 콜로세움’(오후3시50분)을 본 시청자들은 남의 집 가정사의 사사로운 의견충돌에 대한 연예인 패널들의 열띤 공방을 들은 뒤, 이어진 네티즌들의 투표 결과를 지루하게 지켜봐야 했다.

▼논쟁이 될만한 주제를 다뤄야▼

네티즌들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조건으로 나왔다는 의뢰인들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어떠한 결과에도 승복하겠다는 자못 엄숙한 의식도 치렀다. 네티즌의 투표결과에 따라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대던 딸이 강아지를 포기하고, 밴드 뮤지션의 길을 고집하는 아들에게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달라는 엄마의 애원이 잠잠해지니, 이만하면 가정 평화에 이바지하는 프로그램인가?

희한한 제목에다(웬 콜로세움?), 이상한 포맷이라 끝까지 지켜보다가 이런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토론’을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토론을 하려면 그에 맞는 주제를 갖고 해야 한다. TV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논쟁에 붙일 사안이면 공공 관심사가 걸맞다. 형편도 모르는 남의 집 강아지가 무슨 토론 거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토론이란 대개 횡적인 인간관계, 다시 말해 대등한 입장에서 자기변호와 주장이 오가는 걸 전제로 한다. 토론문화가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는 서양에서도 뭘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그걸 반대하는 부모를 TV 토론에 붙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민주국가라도 한 가족의 작은 문제를 전 국민에게 물어 결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TV 전반에 흐르는 지나친 오락화의 경향, 그에 따른 장르 불명 프로그램들의 속출이다.

우리나라 방송인들은 시사프로든, 교양프로든, 드라마든, 뭐든지 재미있게 만들고 봐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포맷과도 제휴가 가능하다는 탈 장르적 사고는 장르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제 빛을 발한다.

알맹이를 잊은 채 껍데기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뭘 추구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프로그램들이 판을 친다. 토크 자체가 형식이자 내용이 되어 버린 토크쇼, 뜬구름 같은 주제로 말 잔치만 성대히 벌이는 토론 프로그램, 재미가 사라진 오락프로그램, 재미로만 빠지는 교양 프로그램 등등.

▼지나친 오락화 가벼움만 남발▼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프로그램이 보고 싶다. 뉴스다운 뉴스, 드라마다운 드라마, 토론다운 토론 프로그램이 보고 싶다.

네티즌의 추상같은 판결에 굴복해 결국 강아지를 갖지 못하게 된 아이가 눈물을 흘리자, 엄마도 눈물을 흘리고, 패널들이 이 아이를 위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강아지를 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던 한 패널은, 선심 쓰듯 “아줌마가 하나 사줄 게”라고 했다. 토론이기를 일찌감치 포기한 이 프로그램은 이쯤에서 오락의 생명인 재미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박성희<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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