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페스티벌]흔들고 내지르고 「젊음 해방구」

  • 입력 1999년 8월 2일 18시 30분


“This is unbelievable!”(믿을 수 없군요!)

국내 첫 록 페스티벌인 ‘인천―송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달 31일 밤11시 인천 송도특설부지. 장대비 속에 선 관록의 록밴드 ‘딥 퍼플’은 진흙탕에서 열광하는 1만6000여 록 마니아를 보고 그저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국내 첫 록페스티벌의 열기◆

비바람을 뚫는 강렬한 사운드에 취해 사방으로 머리를 흔들고(헤드뱅잉), 처음보는 이들끼리 가슴을 부딪히고(모싱), 머리 위로 사람을 이곳저곳 옮기는(보디 서핑)청중들…. “감전의 우려가 있다”며 공연을 망설이던 ‘딥 퍼플’은 “악천후 속에서 여러분들이 보여준 열기는 잊지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며 예정에 없던 앵콜을 자청했다.

공연이 열리기 하루전인 지난달 30일. 무대 옆에 마련된 야영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금세 800여동의 텐트촌으로 변했다. 이는 주최측도 예상못한 수치. 10대보다는 20대와 대학생층이 대부분이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L모씨(남·22)는 “폭발적인 록음악을 ‘몸으로 듣고’마니아들과 함께 생활하면 잠시나마 복잡한 일상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1일 새벽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이틀째 공연이 취소되면서 이번 록 페스티벌은 ‘절반의 성공’으로 접어야 했다.

서울 신촌, 홍익대 인근의 라이브클럽이 활동무대의 대부분이고, TV나 메이저음반사에 등장하려면 발라드를 가미하는 등 연성화해야 살아남는 한국의 록음악. 이처럼 척박한 현실에서 록 페스티벌이 개최된 것은 ‘문화의 해방구’를 원하는 젊음의 잠재력이 폭발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국적 록 페스티벌과 20대◆

이번 공연을 기획한 예스컴의 윤창중사장은 “지금 20대는 가슴 속에 열기가 가득하지만 어디 쏟아부을 곳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은 ‘블랭크 세대(빈 세대)’로 부른다”며 “이번 페스티벌은 그들의 열기를 쏟아 붓기 위한 장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록 페스티벌도 20대를 위한 문화축제가 거의 없는 여건을 고려 3년전부터 기획되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위원)는 록의 특징을 △서양의 다른 음악에 비해 리듬이 강하고 △목소리와 악기를 찌그러뜨리는 디스토션(Distortion)이 있으며 △음량이 크고 감정표현도 바깥으로 터뜨리는 외향성을 지닌다고 요약한다.

이영미는 록을 즐기는 ‘록양식의 인간형’으로 대도시의 고립되고 개별화된 인간을 꼽았다. 그들은 자신의 주관적 느낌이 타인이나 세상 전체보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신세대. 역설 가득한 세상에 대해서는 직설적이고 도발적으로 내뱉고(샤우팅) 비이성적으로 흔들어대며(헤드 뱅잉) 몸을 부딪히면서(모싱) 동질감을 나눈다.

69년 미국의 우드스톡에서 탄생한 록페스티벌이 ‘한국판 우드스톡’이라는 별칭으로 30년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것은 이같이 록을 원하는 세대의 문화적 특성과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록 페스티벌의 가능성◆

비록 하룻만에 멍석을 접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록 페스티벌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상급 뮤지션 확보가 우선되어야한다. 폭우로 공연을 못하고 돌아갔지만 ‘프로디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등 세계 최정상의 록그룹이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7월30일∼8월1일)과 비슷한 시기에 열린 덕분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 록을 키우고 록 마니아의 열기를 발전시키는 일. 90년대 중반이후 ‘록그룹의 인큐베이터’역할을 해온 라이브클럽은 불과 두달 전까지 식품위생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묶여 있었다. 10대 댄스음악에 편중돼 ‘음악적 편식’을 일으키는 TV가요프로도 적잖은 걸림돌. 현재 공중파프로그램 중 MBC ‘수요예술무대’만이 ‘크라잉너트’ ‘노브레인’ 등의 언더그라운드 록밴드에게 무대를 내주고 있다.

◆참가 록그룹◆

▽딥 퍼플〓‘레드 제플린’과 함께 하드록의 양대산맥으로 30여년간 군림해온 관록의 록 그룹. 록음악의 교과서로 불리는 ‘Soldier Of Fortune’을 비롯, ‘Highway Star’ 등의 명곡을 남긴 이들은 95년에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드림시어터〓90년대에는 이례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탈그룹으로 웅장한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곡 전개가 특징. 미 버클리 음대 출신답게 정교한 연주기량을 자랑하는 이들은 이번 송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에 참가, 90년대 록의 명반으로 인정받는 ‘Images and Words’의 수록곡을 선보였다.

▽애쉬〓96년 영국 브릿팝의 후발주자로 데뷔한 그룹. 영국의 ‘국민밴드’인 ‘오아시스’의 맥을 잇는 날렵하고도 묵직한 록넘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번 공연에도 ‘Kung Fu’등의 히트곡을 선보였다.

▽매드캡슐마켓〓90년대말의 록양식인 하드코어(힙합과 헤비메탈의 결합)를 주무기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 밴드. 국내 언더그라운드 클럽밴드 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번 공연에서는 히트곡 ‘Systematic’등을 연주했다.

〈송도(인천)〓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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