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부품업체들 ‘상생의 부활 찬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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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르노삼성 공장-물류창고 르포

《 3일 부산 강서구 신항로에 위치한 C&S국제물류센터 창고. 일본 물류업체인 일본통운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지게차가 대형 트럭에 일본으로 갈 자동차부품을 싣고 있었다. 선적을 지켜보던 한림인텍의 임경섭 상무는 “부품을 일본 닛산 공장에 수출하지 못했다면 회사가 큰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이가 1.5m에 이르는 자동차 천장재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부피가 큰 제품 특성 때문에 수출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통운의 트럭이 여러 부품업체를 돌며 제품을 수거하는 ‘밀크 런’ 방식을 도입하면서 물류비용이 낮아져 수출이 가능해졌다. 밀크 런은 우유회사가 매일 축산 농가를 돌며 원유를 수거하는 방식이다. 》
 

부산 경남지역 등 35곳의 부품업체에서 수거한 자동차부품은 이곳 물류창고에 모인다. 여기서 검수와 함께 한일 양국의 자동차 번호판을 함께 단 대형 트럭에 차곡차곡 실린다. 한일 양국의 도로를 모두 달릴 수 있는 이 트럭은 부산항에서 페리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下關)항에 도착해 닛산 공장으로 제품을 전달한다.

개별 업체가 해외 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생산과 선적, 입·출고 절차 등을 밟아 수출하려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물류비용 때문에 소량 주문은 받을 수조차 없다. 임 상무는 “기존에 한 달 이상 걸리던 수출이 밀크 런 방식을 도입한 이후 6일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 일본통운 부산닛산창고의 김영식 소장은 “국토교통부가 2013년에 일본 차량에 한국 번호판을 달아 양국 도로를 모두 달릴 수 있는 이른바 더블번호판 차량을 허가해준 덕분에 더욱 효과적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선업의 몰락과 현대·기아자동차의 부진으로 어려움에 빠진 부산 제조업체들은 일본 수출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밀크 런 물류로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부품 매출액은 2011년 약 6억2000만 원에서 지난해 4158억 원으로 5년 만에 700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런 성공은 단순히 밀크 런이라는 독특한 물류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위탁 생산하는 닛산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로그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이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 부품업체들의 제품 품질을 닛산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둘러본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대로에 위치한 르노삼성차 공장의 조립라인 근로자들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유연한 몸놀림으로 1분에 1대씩 차량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개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로그를 비롯해 QM6와 SM6 등 7개 차종이 동시에 생산된다. 대부분의 자동차 공장은 많아야 2, 3개 차종을 한 라인에서 생산한다.

한 개 라인에서 7대가 동시에 조립되면 실수가 잦지 않을까. 르노삼성의 이기인 제조본부장(부사장)은 “닛산 공장을 벤치마킹해 설치한 무인운반차(AGV)가 각각의 차 부품만을 담은 ‘블록&키트’를 차체와 같은 속도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부품이 섞이거나 헷갈릴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공장의 경쟁력은 단순히 AGV 같은 장비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 27만 대 넘게 생산하던 부산공장은 2013년에 생산량이 반 토막 났다. 900여 명의 희망퇴직까지 이뤄지면서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닛산의 위탁 생산 물량을 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르노삼성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숨은 5초 찾기’ 활동까지 펼치며 불필요한 작업요소를 최소화했다. 노조는 파업 대신에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함께 땀을 흘렸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세계 각지 공장 중에서 생산성이 좋은 곳에 일감을 몰아주기 때문이다.

부산공장은 세계 46곳에 이르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공장 중 생산성 순위가 2013년 25위에서 지난해 4위까지 올랐다. 세계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을 평가해 발표하는 ‘하버 리포트’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48개 자동차 공장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로그를 지난해 13만 대 이상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현대·기아차 등은 공장 자동화율을 급격히 높이고 있지만 르노삼성 공장의 부품라인 자동화율은 2%에 불과하다. 이 제조본부장은 “자동차의 생산성과 품질은 결국 근로자가 회사를 얼마나 신뢰하고 생산 매뉴얼을 따라 주느냐에 달려 있다”며 “결국 노사 화합이 생산성 향상의 배경이 됐다”고 강조했다.

부산=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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