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리크루트 사건과 진경준 주식 대박 의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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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사회부 차장
이태훈 사회부 차장
1988∼1989년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리크루트 사건’은 전후(戰後) 일본의 최대 부정부패로 꼽힌다. 당시 급성장하던 취업정보 전문기업 리크루트가 부동산 자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싼값에 제공해 상장 후 막대한 차익을 얻도록 한 사건이었다. 리크루트 창업자인 에조에 히로마사 회장은 일본 재계의 정상에 서겠다는 야심으로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 거물급 인사 90여 명에게 비상장 주식을 뿌렸다. 자민당 수뇌부를 비롯해 대학교수, 변호사, 지방의회 의원까지 주식을 받은 대상자가 광범위하게 드러나자 당시 일본에서는 ‘리크루트 주식을 못 받으면 앞날이 유망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건의 파문은 엄청나서 1989년 다케시타 당시 총리가 사임하고 정계의 막후 실력자였던 나카소네 전 총리가 자유민주당을 탈당했다. 전후 일본 정치를 계속 지배한 자민당 일당 체제가 무너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6년 한국에서는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이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 주식으로 120억 원의 차익을 얻은 의혹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진 본부장은 파문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8일 만에 서둘러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리크루트 사건과 진경준 검사장 주식 대박 의혹에는 ‘비상장 주식’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비상장 주식은 두 얼굴이다. 신생 기업은 비상장 주식을 팔아 투자를 받고 싶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반면에 2005년 넥슨처럼 대박이 보장된 우량회사의 비상장 주식은 금덩이나 마찬가지여서 일반 투자자들이 사려고 해도 시장에 나오는 매도 물량이 거의 없다. 어쩌다 매물이 나와도 대주주가 되사는 등 외부 매도를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까지 순서가 돌아가기 어렵다. 김정주 넥슨 대표도 넥슨 주식이 외부인과 직원들에게 팔리는 것을 상당히 꺼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진 본부장은 이런 귀하디귀한 대박 주식을 어떻게 싸게 살 수 있었을까. 그는 미국 이민을 떠나면서 넥슨 지분을 처분한 주주에게서 인수했다며 ‘재테크 차원의 우연한 투자’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넥슨 주식은 씨가 말라 사고 싶어도 못 산다’고 할 만큼 인기가 높았던 점에 비춰 보면 해명을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비상장 주식 거래에 관해 절대권한을 행사했던 김정주 대표가 진 본부장의 주식 취득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특혜 의혹에 공감하는 여론이 대다수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얼마든지 장려할 일이다. 사업이든 주식 투자든 시장의 규칙을 따른 것이라면 그 부(富)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거나 예외적인 특혜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면 그에 마땅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검사는 경제사범을 단속하고 처벌해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누구보다 깨끗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어쩌다 특혜성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초심을 유지하며 과감히 거절하는 게 옳다. 국민은 억울한 약자를 보살피고 거대 사회악을 척결하라고 검사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지, 돈 버는 정보에 쉽게 접근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중국 고사에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참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 것이며)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이란 말이 있다. 공직자들이 처신을 가다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태훈 사회부 차장 jefflee@donga.com
#리크루트 사건#진경준#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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