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이라 더 안 팔리는… 아이스크림 값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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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가격에 소비자 불신 팽배

#1. 친구네 집에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가려고 슈퍼에 간 회사원 김모 씨(38)는 계산대 앞에서 움찔했다. 자신의 동네에서 4800원을 주고 사 먹던 아이스크림이 친구네 동네에선 5300원이었다. 더 싼 곳을 찾으려고 또 다른 슈퍼에 갔더니 이번에는 5800원이었다. 그는 “제품에 가격이 써 있지도 않아서 정가를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2. 주부 성모 씨(52)는 슈퍼에서 바(bar)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무더기로 샀다. 가격표에는 700원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그가 낸 가격은 1개당 190원. 70% 넘게 할인되는 셈이었다. 성 씨는 “아이스크림을 제값 주고 사면 손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쪼그라드는 빙과시장 왜?
아이스크림 가격 표시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스크림 할인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탓에 빙과업계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대목을 맞이했는데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13일 빙과업계와 AC닐슨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시장은 지난해 1조7698억 원(소매가 기준)으로 전년(1조9371억 원)보다 8.6% 줄었다. 아이스크림 사업부문은 한때 알짜 사업부로 통했지만 최근 5, 6년 사이에는 시장이 쪼그라들어 애물단지가 됐다.

이는 ‘반값 아이스크림’으로 상징되는 과다한 할인으로 일부 제품은 팔수록 손해인 역(逆)마진이 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데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할인 관행을 깨기 위해 2011년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도입했고 2012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아이스크림 가격 표시에 나섰지만 동네 슈퍼 등 소매점에서 가격이 표시된 아이스크림을 반기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의 취재 결과 빙그레에서 가격을 표시하지 않은 제품은 전체 38개 중 33개로 86.8%에 이른다. 가격이 표시되지 않은 제품이 해태제과와 롯데푸드, 롯데제과도 각각 66.7%, 42.3%, 33.3%나 된다.

이 같은 현상은 대형마트 확산과 연관이 깊다. 아이스크림은 녹기 쉬운 특성상 동네 슈퍼의 판매 비율이 전체의 80%이고, 대형마트 판매 비율은 10% 미만이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아이스크림은 동네 슈퍼가 사실상 유일하게 제조사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품목인 셈”이라며 “아이스크림을 미끼 상품으로 내걸기 위해 제조사에 가격 할인을 요구하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후식 아이템이 바뀐 것도 한 요인이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아이스커피 등을 즐겨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주로 먹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수도 갈수록 줄고 있다. 여기에 배스킨라빈스 등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업체가 등장하고 심지어 커피전문점도 아이스크림 판매에 나서면서 빙과업체의 입지가 좁아졌다.

사정이 어렵다 보니 아이스크림 베스트셀러는 부라보콘(해태제과·1970년), 월드콘(롯데제과·1986년), 메로나(빙그레·1992년), 구구(롯데푸드·1985년) 등 ‘고령화된 아이스크림’이 주류를 이룬다. 빙과업계는 신제품 개발보다는 기존 제품 리뉴얼에 주력하고 있다.

빙과업계는 고육지책 마련에 나섰다. 해태제과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과다한 할인을 요구하는 대리점과 관계를 끊는 등 납품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도 각각 마카롱 아이스크림과 빙수류 등 고급 디저트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강화하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아이스크림#반값#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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