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그래 프로젝트’ 요르단 중고자동차 시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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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車 전시장에 한국 브랜드 수백대씩 진열
“싸고 튼튼… 중산층이 많이 찾아”, 해마다 6만대 이상 팔려 나가
중동지역 중계무역 기지 역할도… 현지 당국 규제로 2013년 수출 줄어
제2, 제3의 장그래 재도약 준비

“요르단 중고차 사업, 정말 좋은 사업이야. 꼭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 대표가 주인공인 장그래를 칭찬하며 격려하는 장면이다. 앞서 계약직 신입사원 장그래는 자신이 소속된 팀의 구성원에게 ‘요르단 중고차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었다. 사내 비리에 엮여 묻힐 뻔한 사업을 장그래의 ‘영업3팀’이 되살린 것. ‘미생’의 원작자인 윤태호 씨는 “신문에서 중고차가 중동지역 주요 수출품목이라는 기사를 읽고 이에 착안해 만화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만화와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이야기의 배경인 요르단 중고차시장은 실제로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다. 연간 10만여 대가 거래되는 큰 시장인 요르단 중고차시장은 요르단은 물론이고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까지 연결되는 중고차 중계무역의 기지 역할도 한다. 한국 수출역군들이 사막에서 땀과 눈물로 일군 요르단 중고차시장을 찾았다.

○ “한국 중고차, 인기 최고”

요르단 자동차 10대 중 6대는 한국산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동쪽으로 35km 떨어진 도시 자르카의 한
 한국산 중고차 매매시장에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등이 늘어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요르단은 1, 2위를 다투는 한국 중고차 
수출시장으로 한국차 시장 점유율이 60%에 이른다. 자르카=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요르단 자동차 10대 중 6대는 한국산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동쪽으로 35km 떨어진 도시 자르카의 한 한국산 중고차 매매시장에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등이 늘어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요르단은 1, 2위를 다투는 한국 중고차 수출시장으로 한국차 시장 점유율이 60%에 이른다. 자르카=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동쪽으로 35km 떨어진 도시 자르카. 서울과 비슷한 면적(600km²)의 요르단 제2 도시인 이곳에서 차로 3시간만 가면 이라크 국경에 닿는다. 도시 전체가 자유무역지대라 요르단 무역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자르카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품은 한국 중고차다.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쏘나타 등 한국 중고차 수십∼수백 대를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중고차 가게가 도시 곳곳에 있다. 자르카 외곽의 산업단지에는 한국 중고차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도매상 수십 곳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중고차상을 운영하는 하이삼 쿠데이샤 사장(50)은 한국 차를 17년째 취급하고 있다. 쿠데이샤 사장은 “1년에 5, 6번 한국에 들러 한 번에 100여 대씩 한국 차를 사온다”고 말했다. 한국 중고차 사업이 잘돼 인천항 인근에 회사를 차리고 아파트도 마련했다.

요르단은 세계 최대의 한국 중고차 수출시장 중 하나다. 2008년부터 4년 연속 한국 중고차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다. 지난해에도 3억108만 달러어치(약 3315억 원·6만3536대)를 수입해 리비아(3억622만 달러)에 이어 한국 중고차 수입국 2위에 올랐다.

요르단 중고차시장에는 한국과 중동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의 대기업 종합상사들이 개척하면서 열린 요르단 시장은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맞아 크게 성장했다. 한국에서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대거 내놓은 중고차가 국내에서 소화가 안 되자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중동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은 중고차시장 활황에 불을 붙였다. 이른바 ‘전후(戰後) 특수’로 적당한 성능의 값싼 차에 대한 이라크 내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전후 이라크가 자체 수입여건이 안 되자 요르단을 통한 ‘재수입’으로 한국 차를 들여갔다. 이정현 KOTRA 암만무역관 과장은 “당시에는 웬만큼 겉이 멀쩡하고 시동이 걸리는 한국 중고차는 무조건 팔렸다”라고 말했다.

○ “한국産이 요즘 요르단 시장의 대세”

요르단 시내에서 한국 차를 찾기란 중동에서 모래 찾기 정도로 쉽다. KOTRA에 따르면 요르단에서 한국 차의 시장 점유율은 60%다. 자르카 자유무역지대 투자위원회의 나빌 롬만 회장은 “전자제품, 자동차 등 한국 제품이 요즘 요르단 시장의 대세”라며 “월 1500달러 이상을 버는 중산층이 주로 한국 차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미생’으로 요르단 시장이 국내에 널리 알려졌지만 요즘 현지의 상황은 예전만 못하다. 지난해 요르단의 한국 중고차 수입액은 2012년 대비 32.6% 감소했다. 요르단 정부가 매연, 고장 등을 이유로 생산된 지 5년이 넘은 중고차 수입을 금지한 게 치명타였다. 아랍 민주화 물결 이후 리비아 등에서 요르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 차 수입에 나선 것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한국 상사맨들은 요르단에서 제2의 비상(飛上)을 준비 중이다. 한동안 중고차 수출사업을 중단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은 내년부터 중동의 렌터카업체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개한다. 요르단 사업을 관할하는 윤여준 대우인터내셔널 두바이지사장은 “일단 내년에 100만 달러어치 이상 수출을 목표로 잡았다. 시리아 내전만 잠잠해지면 더 많이 팔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르카=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미생#중고차#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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