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CB 잉크 31년… 세계유수 제조사들과 선두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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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화학연구소
전자제품에 꼭 필요한 전문잉크, 고품질 제품으로 수입 의존도 낮춰

인쇄회로기판(PCB)은 전자제품의 ‘혈관’에 비유된다. 실핏줄 같은 배선 회로로 각종 전자부품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모든 전자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이다. 이 정밀한 제품의 인쇄 재료에는 PCB 전용 잉크가 따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PCB 잉크 분야에서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며 틈새를 제대로 공략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경기 시흥 시화공단에 위치한 ㈜서울화학연구소(대표 오흥택·www.scrl.co.kr)다. 이 회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PCB 후방산업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주역이다. 독자적인 품질과 가격 경쟁력, 원천기술 확보란 세 마리 토끼를 쫓으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PCB 잉크는 프린팅 공정 기반의 각종 전자 산업용 잉크 중에서 인쇄회로기판에 쓰이는 전용 잉크를 말한다. 주로 전자회로 보호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며 대표적인 잉크의 종류로서는 회로를 형성할 때 쓰이는 ‘에칭레지스트 잉크’와 납 내열성 잉크인 ‘솔더레지스트 잉크’, 부품의 표시용으로 사용되는 ‘마킹잉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PCB 잉크 생산은 1983년에 이뤄졌다. ㈜서울화학연구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PCB 잉크는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해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주로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사다 썼기 때문에 무역 적자도 만만치 않았다. 대외 의존도가 심했던 이 분야에서 국산화의 깃발을 꽂은 기업이 바로 ㈜서울화학연구소다.

80년대 후반 UV경화형 잉크와 IR경화형 잉크를 개발한 데 이어 1996년 사진현상형(PSR) 잉크를 처음 개발한 것은 시장에서 ㈜서울화학연구소가 결정적 신뢰를 얻는 이정표가 됐다. PSR 잉크는 PCB 기판의 회로를 보호하는 절연층을 형성하는 데 쓰인다. 필요한 회로만 선택적으로 노출시켜야만 해 노광 및 현상성이 우수해야 하며 도금이나 표면실장(SMT) 등 후속 공정을 견딜 수 있는 신뢰성도 확보해야 한다.

이 회사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PCB 잉크가 필요한 곳의 상황과 납품업체의 요구에 맞도록 컨설팅부터 제품공급까지 책임지고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도 늘었다. 직원 수 40명의 이 작은 기업은 국내를 넘어 미국과 인도, 브라질, 이란 등 15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며 세계 유수의 PCB 잉크 제조사들과 선두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00여 개 업체에 PCB 잉크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지만,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색 발광다이오드(LED) 잉크와 플렉시블 솔더레지스트 개발로 PCB 잉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지속적 연구개발(R&D)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내외에서 독보적 아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서울화학연구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장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 오흥택 대표 인터뷰 ▼
“수입 대체에 보람… 세계 제패까지 가야죠”


“경쟁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제품이 세계를 제패하는 시기가 꼭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보이고 멀지 않았다고 봐요.”

오흥택 ㈜서울화학연구소 창업자는 한국 PCB 잉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에폭시 수지 제조업체 국도화학㈜ 출신인 오 대표는 우리나라 PCB 잉크 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1983년 에폭시 수지 가공 기술을 토대로 제조업을 시작했다. 직원 수 4∼5명의 소규모였다. 이후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 노력으로 PC·휴대전화 등 첨단 전자기기 제조에 꼭 필요한 PCB 잉크를 국내에 공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 국내 전자 업체들이 수입에 의존하던 PCB 잉크를 국내에서 자체 조달,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이고 수요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데 일조했다.

PCB 잉크는 초창기 기술 장벽이 높고 국내에서는 처음 도전한 분야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간의 성장통은 만만치 않았다. 일본, 유럽 등지의 2∼3개 업체가 쥐락펴락하던 PCB 잉크시장에서 국산제품을 뿌리내리기 위해 쉼 없이 고군분투했다.

“엔지니어가 되어 환경에 맞춰 밀고 나간 거죠. 새로운 제품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왔죠. 경쟁에서 2등이란 없잖아요. 새로운 제품을 계속 추진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겁니다. 그래서 서울화학연구소는 모든 전자산업의 기초가 되는 PCB사업을 도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시화 생산기지와 군산 공장 두 곳에서는 PCB 잉크가 사용되는 모든 분야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지만 힘이 있는 기업을 일궈낸 최고경영자(CEO)의 눈은 여전히 세계로 향해 있었다.

조창래 기자 chl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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