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富村서 사라진 은행들… 산업단지로 몰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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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점포 폐점-신설로 본 경기불황지도
6대 은행 작년 점포현황 GIS분석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상가 1층. ‘통합이전 안내’라는 현수막만이 과거 이곳에 은행 지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난해 8월 은행 영업점이 문을 닫은 뒤 이곳은 줄곧 비어 있다. 근처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보증금 3억 원에 월 1500만 원은 내야 하는데 요즘 그만한 임차료를 감당할 사업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은행권에 돈 안 되는 지점을 통폐합하는 영업점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은행권 순이익이 전년 대비 30%가량 줄어들 정도로 업황이 나빠진 데다 금융당국도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 우리, 하나, 신한, IBK기업, 외환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133개 점포를 통폐합했다.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이 안 나는 주택밀집지역 점포를 없애는 대신 젊은 직장인이 몰리는 산업단지 지역에 경쟁적으로 점포를 열고 있다. 과거 부동산 경기를 주도했던 서울 강남 3구,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등에서 무더기로 은행 지점이 사라진 반면 구로디지털단지나 송도스마트밸리 등에는 신설 점포가 들어서고 있다. 동아일보가 지리정보시스템(GIS) 업체 ㈜GIS유나이티드의 도움을 받아 2013년 6대 은행의 점포 통폐합 및 신설 패턴을 분석했다.

○ 부촌에서 은행이 사라졌다

지난해 전국 시군구 가운데 은행 점포가 가장 많이 문을 닫은 곳은 서울 강남구(9개)였고 서초구(7개)와 송파구(6개)가 그 뒤를 이었다. 강남 3구에서도 잠실, 반포, 대치동, 도곡동 등 주거밀집지역 점포가 주로 간판을 내렸다. 경기 성남시에서는 7개 통폐합 점포 중 5개가 분당구였다.

구조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경기 침체. 주택담보대출 자체가 줄어든 데다 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이 축소돼 대출에 따른 수익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주거지 특성상 유동인구가 없다는 점도 큰 약점이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 더욱 촘촘하게 점포를 내는 ‘스타벅스 전략’은 점포 중복에 따른 임차료, 인건비 부담으로 사실상 폐기됐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특정 고객 겨냥 점포도 대거 문을 닫았다. 우리은행은 PB점포 ‘투 체어스(Two chairs)’ 5곳을 인근 지점과 합쳤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부자들의 여유자금을 일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폈지만 정작 부자들은 자산을 한곳에 모으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며 “부자들이 혜택만 누리고 수익에는 도움이 안 되는 ‘체리피커’ 성격이 일반 고객보다 강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대학생을 노리고 만든 ‘락스타’ 점포 15곳을 올 초 폐쇄했다.

○ 월급계좌 겨냥한 산업단지 점포 부상

과거 은행 점포를 열 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배후 인구였다. 하지만 요즘은 ‘얼마나 많이 사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직장인이 있는지’가 점포 개설의 가장 큰 기준이다.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통계와 통계청 사업체 종사자 수 자료를 점포 개·폐점과 연결시키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에서 문을 닫은 점포 98곳의 반경 500m 내 아파트 가구 수는 평균 4881채였지만, 신설 점포 22곳은 500m 안에 2387채뿐이었다. 하지만 문을 닫은 점포 인근 500m 내 사업체 종사자는 8862명이었고, 신설 점포의 경우 1만2042명이었다. 가구 수가 많은 곳보다는 직장 종사자가 많은 곳에 은행 점포들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신설 점포 상당수는 산업단지에 입주했다. 외환은행은 9개 신설 점포 중 5개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등 산단 지역에 냈다. 경기 수원시(8개), 성남시(5개), 부산 강서구(4개) 등에 신설이 많았지만 이들 지역은 광교신도시 판교신도시 명지국제신도시 개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업단지 점포가 구조조정을 비켜간 큰 이유는 ‘월급쟁이 고객’을 대거 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에게는 월급계좌를 유치해 예금, 대출, 카드 등을, 기업에는 대출, 퇴직연금 등을 각각 판매할 수 있다. 신생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입·퇴사가 잦아 고객 유치에 유리하다. 박지우 국민은행 고객만족본부장은 “주거지역은 한계가 명확한 레드오션이지만 산업단지는 계속 증가하는 데다 상품 영업에도 유리해 지속적으로 점포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안하늘 인턴기자 고려대 영문학과 4학년
#은행#구조조정#경기불황#은행 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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