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나가보세요, 명문대-지방대 구분 의미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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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서 맨손으로 年매출 1조원 기업 일군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한국 청년들에게 할 말 있다”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뒷줄 가운데)이 29일 모교인 조선대 학생들과 만나 “열정적인 삶을 살라”고 당부한 뒤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 제공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뒷줄 가운데)이 29일 모교인 조선대 학생들과 만나 “열정적인 삶을 살라”고 당부한 뒤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 제공
“여러분은 지방대에 다닌다고 기죽어 지내나요? 세상이 대학 간판만 따지는 것 같아 억울한가요? 그런 생각부터 버리세요.”

29일 제12차 세계한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의 한 회의실. 재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인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56)은 그를 만나러 온 대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세계한상대회는 매년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한인경제인들이 모여 사업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행사다.

이 자리는 조선대를 나온 박 회장이 취업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모교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 마련했다. 본사가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긴 비행 끝에 전날 오후 도착했지만 박 회장은 피곤한 기색 없이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소위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외국에 가면 한낱 낯선 동양인에 불과합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후배들에게 몇 가지를 주문했다. 우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는 “남들이 하루에 11시간 공부한다면 자신은 12∼16시간 투자해야 남들을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일에 대한 열정과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영역을 개척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후배들에게 자신이 유럽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현재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소개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빈에 본사가 있는 연매출 1조 원 규모의 종합상사 대표이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가장이었다.

1997년 그가 다니던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오스트리아 법인장이던 그는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통보를 받고 그만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법정관리 중인 회사가 해외 조직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도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고, 외환위기로 다른 직장에 취업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회장은 그 대신 현지에서 살길을 찾기로 했다. 그는 우선 익숙했던 것과 결별하기로 다짐했다.

10여 년간 회사에 다니는 동안 가슴에 늘 달고 있던 ‘기아 배지’를 떼는 게 첫걸음이었다. “기아차는 잘나가던 대기업이었습니다. 나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자체가 아닌 기아차 법인장이라서 만난 것이었지요.”

기억에서 자동차도 지워버리기로 했다. ‘가장 친숙한 것을 잊고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진정한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유럽에 정착한 한인들은 식당이나 식료품점, 여행사 등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래선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우크라이나,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러시아만 해도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줄을 이었지만 이 나라들에는 아직 한국 사람이나 기업의 손길이 덜 미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던 것이다.

박 회장이 처음 선택한 사업은 사탕 포장지 판매였다. 운 좋게 우크라이나의 사탕 제조업체와 컨테이너 4개 물량의 사탕 포장지를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업체에서 만든 포장지를 우크라이나로 보내고 이를 중개한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장지에 문제가 생겨 우크라이나 업체는 박 회장에게 배상금 165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는 간곡히 요청해 배상금을 50만 달러로 깎았지만 큰돈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매달 빚의 일부를 갚아 나갔다. 다른 제품을 수입해 팔아 번 돈의 대부분을 배상금 지급에 썼다. 2년 6개월 뒤 배상금을 다 내자 우크라이나 업체 대표는 “당신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자동차를 판매하는 다른 회사 대표를 연결해줬다.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다리를 놓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박 회장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14개국에서 25개 현지 법인을 운영할 만큼 회사 규모도 커졌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지난달 모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회장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익숙함을 버릴 용기를 갖되 모교에 대한 자긍심만큼은 남겨두라고 주문했다.

“조선대는 나에게 세상에 맞설 꿈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지 지방대 중의 한 곳일 뿐이지요. 그렇다고 이 같은 틀에 갇혀 있다면 학교도, 나도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광주=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박종범#영산그룹#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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