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힘이 구미-천안-아산 집값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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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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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단지 확장으로 2년째 10%이상 뛰어

#1. 경북 구미시와 맞닿은 칠곡군 석적읍에서 영업 중인 ‘글로벌부동산’ 이화준 전무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지난주에 아파트 두 채를 계약했는데 LG전자와 삼성전자 사내커플이 결혼하면서 산 것이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일걸요.”

이 일대는 2년 전만 해도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길 건너 구미3산업단지에 있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LS전선 공장이 수출 증가로 직원을 늘리면서 석적읍이 뜬 것이다. 구미 시내에서 집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옮겨오면서 일대 아파트는 1년 새 3000만∼4000만 원이 뛰었다. 대기업의 젊은 맞벌이 부부가 몰리자 어린이집은 무려 1억 원의 권리금까지 붙었다.

#2.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를 잇는 지방도 628호선은 출퇴근 때면 대형버스가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아산 탕정산업단지의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코닝 직원들이 천안시 불당동 백석동 등으로 타고 다니는 통근버스다. 출퇴근 차량이 늘면서 평소 10분 정도인 거리는 40∼50분씩 정체가 이어진다. 천안시 불당동 강일부동산의 최갑식 대표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직원들도 교육 여건이 좋은 천안 쪽을 선호한다”며 “재작년부터 집값이 뛰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이미 회복했다”고 말했다.

부산발(發) 광역시 훈풍이 꺾이면서 전국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확산되는 가운데 ‘나 홀로 활기’를 띠는 지방 중소도시가 있다. 경북 구미시, 충남 천안시, 아산시가 대표 선수다. 대기업이 만든 일자리가 부동산 시장의 호황을 이끌고 있는 곳이다.

대기업 고용 늘자, 지역 부동산 활짝 충남 아산시 탕정산업단지 뒤로 주로 삼성 직원들이 입주한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아산을 비롯해 천안, 구미는 대기업 일자리가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지방 중소도시로 부동산 불황에도 상관없이 집값이 뛰고 있다. 아산=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대기업 고용 늘자, 지역 부동산 활짝 충남 아산시 탕정산업단지 뒤로 주로 삼성 직원들이 입주한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아산을 비롯해 천안, 구미는 대기업 일자리가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지방 중소도시로 부동산 불황에도 상관없이 집값이 뛰고 있다. 아산=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전국 집값 하락 때 10% 이상 올라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던 이 도시들의 집값은 2011년부터 2년째 매년 10% 이상 뛰고 있다. 올 1월 천안과 아산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4%, 10.0% 올랐다. 구미도 11.3% 뛰었다. 서울이 4.7% 하락했고, 전국이 0.5%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둘러본 천안·아산과 구미 일대 중소형 아파트는 1년 새 일제히 4000만 원 안팎으로 급등해 있었다. 지난해 초 1억7000만 원에 팔렸던 구미시 구평동 푸르지오(전용면적 84m²)는 올 들어 2억1000만 원대로 뛰었다. 천안시 불당동 동일하이빌(전용면적 75m²)도 1년 전 2억2000만 원에서 최근 2억6000만 원에 거래됐다.

3개 도시 모두 전세금도 꾸준히 치솟아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85%를 넘어섰다. 일부 단지는 전세금과 매매가 차이가 1000만 원에 불과했다. 구미시 전원부동산의 김순숙 소장은 “전세금이 워낙 뛴 데다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커서 전세를 찾다가 아예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미분양 아파트도 일부 대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팔렸다. 2008년 3800채를 넘었던 구미시 미분양은 작년 말 500여 채로 급감했고, 7200채를 웃돌던 천안시 미분양도 1200여 채만 남아 80%가 이미 소진됐다.

당연히 분양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22일 천안시 두정동에서 문을 연 ‘e편한세상 스마일시티’ 본보기집에는 지난 주말 1만5000명이 다녀갔다. 다음 달 탕정산업단지 인근 아산시 음봉면에서 분양하는 ‘아산 더샵 레이크시티’과 칠곡군 석적읍에서 선보이는 ‘효성해링턴 플레이스’는 본보기집을 열기 전인데도 많게는 하루 50통의 문의전화가 온다. 김신규 백일산업개발 부장은 “구미 지역은 과거 ‘대구 수성 불패’ 얘기가 나오던 2004∼2005년 집값 급등기 때에 육박할 만큼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 2년 새 신규 고용 1만5000여 명 늘어

현지 시민들은 “대기업의 고용 창출 덕분에 지역에 활기가 넘친다”고 입을 모았다.

구미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삼성SDS 대우일렉 코오롱 STX에너지 효성 동국제강 등 대기업 공장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 기업들의 투자가 늘면서 구미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직원은 최근 2년간 1만5000명 이상 늘었다. 여기다 LG디스플레이가 1조2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2조 원을 들여 확장 공사를 벌인 4·5산업단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수만 명이 신규 채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준환 효성 분양소장은 “집 사는 사람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인”이라며 “20, 30대 맞벌이 부부의 연봉이 7000만∼8000만 원 수준이라 탄탄한 실수요자 기반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천안·아산 지역 또한 탕정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삼성 액정표시장치(LCD) 단지가, 아산시 배방지구 인근에 현대차 아산공장과 삼성반도체 공장이, 천안 백석산업단지에 삼성SDI 공장이 들어서 있다. 2015년까지 삼성 LCD단지는 64만 평이 추가로 확장될 예정이다.

기업의 고용이 늘면서 천안·아산 지역 인구는 매년 2만1000명씩 급증해 전국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인다. 최갑식 대표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 정도 숫자면 엄청난 것”이라며 “서울, 경기 수원 용인, 경남 창원 등에서 대기업 직원들이 발령을 받아 천안·아산 지역으로 꾸준히 옮겨오고 있다”고 말했다.

○ 외지인까지 원룸 투자… 10%대 수익

특히 구미산업단지 인근 인동 일대에는 원룸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거대한 원룸촌을 형성하고 있다. 2년 전 1800개였던 원룸 건물은 현재 2500개를 넘어섰지만 찾는 사람이 많아 빈방이 없다. 특히 기숙사가 부족한 기업들이 원룸 수십 채씩은 물론이고 아파트 한 개 동을 통째로 임차하는 것도 구미만의 특징이다.

구미시 진평동 한국공인중개사의 석재호 이사는 “기업이 한꺼번에 원룸을 임차해 관리비나 대출이자를 빼고도 원룸 임대로 13∼15%대의 수익률을 올린다”며 “서울 대구 부산 등 외지인까지 와서 투자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늘면서 집을 찾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3개 도시의 신규 아파트 공급은 크게 줄어들어 앞으로도 이 같은 호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미는 올해 신규 입주 아파트가 단 한 채도 없고, 천안·아산 지역도 2011년 9300채를 넘던 신규 입주 아파트가 올해 840여 채로 쪼그라들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지방 시장은 수요가 제한돼 있어 회복 사이클이 금방 가라앉을 수 있는데 대기업이 뒷받침하는 지방 중소도시는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구미·천안=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지방#중소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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