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생겨도 빈집 수두룩… 이삿짐센터 일감은 망한 식당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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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 침체 장기화… 서민경제 기반까지 흔들

《 경기 김포시에서 8년째 이삿짐 용달차를 모는 장모 씨(50). 일을 시작한 2005년 인근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한 달에 400만 원은 벌 수 있었다. 2008년 김포 고촌·장기지구 입주 때도 벌이가 괜찮았다. 하지만 김포 한강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2011년 오히려 일감이 끊겼다. 지난해에도 대규모 단지가 줄줄이 완공됐지만 일부 전셋집 외엔 찾는 곳이 없었다. 입주를 하지 않아 반쯤 빈 아파트가 수두룩한 탓이다. 》
새집은 물론이고 기존 집에서도 이사가 사라지면서 장 씨는 용달차 한 달 기름값인 100만 원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고등학생 아들의 학원을 끊은 지도 오래. 76m²짜리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이 5000만 원, 마이너스통장 빚도 1200만 원으로 늘었다.

올 들어 들어온 일이라곤 달랑 하나.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식당의 짐을 옮겨주고 왔다. 이사하는 집은 없고 유일한 일거리가 폐업 정리였던 셈. 그는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기니 우리 같은 서민만 죽어난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동산 경기침체는 빚을 진 ‘하우스푸어’나 전셋집을 찾아 떠도는 ‘렌트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설·부동산 장기불황은 집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생계형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밑바닥 경제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서울의 최대 가구매장 밀집지역인 마포구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점포 정리를 하며 폐업을 준비 중인 가게가 늘고 있다. 주택 거래가 실종되고 이사하는 사람이 줄면서 가구를 사는 손님이 사라진 탓이다. 27일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가구거리가 생긴 이후 이런 불황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의 최대 가구매장 밀집지역인 마포구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점포 정리를 하며 폐업을 준비 중인 가게가 늘고 있다. 주택 거래가 실종되고 이사하는 사람이 줄면서 가구를 사는 손님이 사라진 탓이다. 27일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가구거리가 생긴 이후 이런 불황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거래 실종…자영업자들도 바닥으로 내몰려

집 한 채가 거래되면 중개업, 이사, 도배 등을 하는 수십 명의 서민에게 일감이 생기지만 주택 매매가 실종되면서 이런 구조는 이미 깨졌다. 지난해 주택 매매거래 건수는 73만5414건으로 전년보다 25% 이상 줄었다. 2006년 관련 통계가 공식 집계된 이후 최저치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주택 거래가 끊기면서 주변 경기가 다 죽었다”며 “건설·부동산 불황은 일자리 감소와 가계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제 성장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부동산중개업소와 이삿짐센터. 지난해 1∼10월 전국에서 중개업소 1만3685곳이 문을 닫고 1292곳이 휴업했다. 약 10만 명이 종사하는 이사업계도 지난해 약 40%가 폐업했다.

박만숙 한국포장이사협회장은 “이사업계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진짜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나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마찬가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20년 넘게 장사해온 이모 씨(52)도 최근 폐업을 결정하고 점포 정리에 들어갔다. 한창 호황일 때는 한 달에 700만∼800만 원도 벌었지만 3년 전부터 직원 월급과 임차료 주기도 어려워졌다.

그는 “장사를 할수록 적자라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만 까먹고 있다”며 “앞으로 뭘 할지 결정도 못 하고 문부터 닫는다”고 하소연했다. 주변 상인들도 “가구거리가 생긴 지 50년이 넘었는데 이런 불황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하다 지난해 고양시 삼송동으로 옮겨온 이모 씨(44)는 “입주 자체가 안 되는 데다 새집에 들어와도 집값이 워낙 떨어지다 보니 인테리어를 새로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털어놨다.

본보가 이사·인테리어·중개업계에 의뢰해 최근 5년 새 주택 거래가 줄면서 사라진 관련 업계 종사자의 연간 소득을 추산한 결과 9085억 원으로 집계됐다.

○ 공사현장이 사라지니 실업자 속출

민간·공공공사 일감이 줄면서 시멘트·레미콘·건자재업 종사자와 건축기능공들도 생계를 위협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국내 건설공사 수주액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년째 경기 파주시에서 레미콘 기사로 일하는 전모 씨(54)는 지난해 처음으로 월수입이 100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 한때 한 달에 200차례 건설현장을 오갔지만 이제는 운 좋아야 하루에 한 번 일을 나간다. 레미콘 유지비만 한 달에 300만 원이라 이미 카드론으로 1000만 원을 끌어다 썼다.

그는 “동료 중에 일감이 없어 1년 넘게 노는 사람이 많다”며 “용접이나 택배기사로 일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건설현장이 줄면서 지방으로 일감을 찾아 떠나는 도배 미장 장판 등을 하는 기능공도 늘었다.

지난해까지 4대강 사업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이들에게 그나마 버팀목이 됐지만 올해는 굵직한 개발사업 계획도 없는 상황. 여기다 새 정부는 복지예산 마련을 위해 SOC 사업 예산을 줄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밑바닥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복지도 결국 일자리가 유지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고용을 위해서도 적정한 건설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임수·장윤정 기자 imsoo@donga.com   
김명종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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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빈집#이삿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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