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장경제의 모델’ 협동조합이 뜬다]<下>해외 성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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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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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협동조합 ‘미그로’ 年매출 32조원

유럽 선진국에서는 협동조합들이 대기업 마트와 경쟁할 만큼 탄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형 소비자협동조합인 ‘이페르콥’ 매장의 모습. 환경과 사람들 제공
유럽 선진국에서는 협동조합들이 대기업 마트와 경쟁할 만큼 탄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형 소비자협동조합인 ‘이페르콥’ 매장의 모습. 환경과 사람들 제공
“콥(Coop)에 가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슈퍼마켓에 가자”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콥은 협동조합(코페라티바·cooperativa)의 줄임말. 일반인이 많이 찾는 슈퍼마켓 대부분이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협동조합과 슈퍼마켓이 ‘동의어’로 쓰이는 것이다.

이탈리아 동북부의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콥이탈리아’는 지난해 기준 매장 수만 150개, 연매출은 19억2000만 유로(약 2조7264억 원)로 코스트코 한국법인의 연간 매출(약 2조 원)보다 크다.

스위스에서도 발음만 조금 다른 ‘쿱(Coop)’이 슈퍼마켓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스위스 소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미그로(Migro)’와 ‘쿱’은 모두 협동조합이다. 스위스 최대 도시 취리히의 중앙역부터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규모만 다를 뿐 두 조합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업계 1위 미그로는 스위스 인구 760만 명 중 200만 명이 조합원이며 연간 매출액은 250억 스위스프랑(약 32조 원)이다. 고용인원은 8만3000명으로 스위스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곳이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들이 이렇게 대기업과 규모의 경쟁을 벌일 만큼 성장했다. 소매, 농업 등에서는 이미 일반 기업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박창환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준비기획단 팀장은 “규모는 대기업 수준이지만 조합원들의 자발적 출자와 참여로 구성된 조합이라 불황에도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각종 사회공헌 사업도 적극적으로 벌인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팀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창단 이후 2006년까지 유니폼에 광고를 붙이지 않았다. 구단 주인인 17만 명의 시민조합원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는 유니세프(UNICEF) 로고를 유니폼에 새기고 구단 수익의 0.7%를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4년마다 직접 단장을 선출한다.

이 밖에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 오렌지 등 과일의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선키스트, 키위 재배로 잘 알려진 뉴질랜드 제스프리 등도 모두 협동조합이다.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는 한국은 유럽의 선진국과 달리 협동조합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한국의 협동조합들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비즈니스 모델’로서 경제적 이윤 창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했다. 장승권 성공회대 교수(경영학)는 “해외에서는 협동조합을 ‘협동하는 기업(cooperative enterprise)’이라고 부른다”며 “자칫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좋은 일만 하려다간 조합이 금방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5인 이상이 모이면 결성이 가능해지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실제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의 경우 300인 이상이 3000만 원을 출자하면 병원 인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협동조합의 취지와 정반대로 운영되는 ‘사무장병원(일반인이 의사를 고용해 세운 불법 병원)’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노려 지원비만 챙기고 ‘개점휴업’하는 협동조합이 난립할 수도 있다.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정부의 ‘직접 지원’이 커질수록 조합의 자립 기반은 약화되고 망하는 곳도 속출할 것”이라며 “일반 기업과 차별받지 않으면서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간접 지원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시장경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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