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올인 명문대생들, 어느날 중동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 태양광으로 압축하는 쓰레기통 개발 벤처 4인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이라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벤처기업 ‘이큐브랩’을 창업한
대학생들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발로 뛰며 배우고, 외부 지원도 활
용한 끝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왼쪽부터 권순범 대표, 권형석 영업팀장, 이성구 마케팅팀장. 아래 사진은 이큐브랩이 이달 초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캠퍼스에 설치한 태양광 쓰레기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이라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벤처기업 ‘이큐브랩’을 창업한 대학생들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발로 뛰며 배우고, 외부 지원도 활 용한 끝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왼쪽부터 권순범 대표, 권형석 영업팀장, 이성구 마케팅팀장. 아래 사진은 이큐브랩이 이달 초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캠퍼스에 설치한 태양광 쓰레기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웬 보이스피싱이야∼.”

5월 초 어느 날 새벽 눈을 비비며 휴대전화를 받은 권순범 이큐브랩 대표(24·연세대 전기공학부 3학년 휴학)는 이상한 억양의 목소리를 듣고는 중국에서 걸려온 사기 전화라고 생각하고 끊었다. 그런데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유 메이킹 솔라빈(Are You Making Solar Bin·당신이 태양광 쓰레기통을 만드나요)?”

낯선 억양을 가만히 들어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바이어가 태양광 쓰레기통을 구매하겠다는 것이었다. 권 대표는 “당시 시제품조차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영어로 번역해 올린 우리의 공모전 우승 소식을 보고 해외에서 문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최근 태양광 쓰레기통 12개를 개당 300만 원에 사우디아라비아 회사에 팔아 36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벤처 설립 이후 첫 매출을 수출로 올린 것이다.

○ 신촌 쓰레기통에서 얻은 아이디어

지난해 3월 이큐브랩을 설립한 창업자 4명은 2009년 사회적기업에 경영을 조언해 주는 봉사단체인 소셜컨설팅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만났다. 이들은 “태양광 쓰레기통을 만들어 보자”는 권 대표의 제안에 의기투합했다.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이 될 실력이 있었지만 평소 창업해 인생을 개척해 보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신촌에서 자취를 하던 권 대표는 매일 집 주변 유흥가 쓰레기통에서 쓰레기가 넘치는 것을 보면서 ‘집에서 쓰레기가 넘치면 손이나 발로 눌러 압축하는데 거리의 쓰레기통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자동으로 압축하는 기능이 있는 쓰레기통에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쓰레기가 넘칠 때 담당 구청에 알려주면 청소차가 필요할 때만 나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권 대표는 “손으로 대강 그린 그림 수준의 설계도를 들고 청계천 주변 철물점들을 돌며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대부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 청계천 찍고 남양주까지

창업자 4명은 50만 원씩 출자해 허름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일대 철물 가공 공장을 돌았다. 창업 멤버인 권형석 영업팀장(25·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휴학)은 “현장에서 배우며 기본 설계도면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태양광 모듈을 구하려고 전국에서 열리는 신재생에너지 박람회를 찾아갔다. 글로벌 시장에서 태양광 사업을 하는 OCI나 한화그룹 직원을 붙잡고 태양광 모듈을 사고 싶다고 했다. 권 팀장은 “당시 국내 태양광 기업들이 파는 제품이 무엇인지도 몰라 만들지도 않는 30W용 소형 태양광 모듈을 달라고 했으니 황당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승재 생산팀장(25·서울대 화공생물공학부 4학년 휴학)을 비롯해 창업 멤버가 모두 명문대 출신이다 보니 부모들은 고시를 보거나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태양광사업을 하는 한화케미칼이 이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1억 원을 조건 없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대하던 부모들도 “한번 해 봐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 “두드리니 열리더라”

권 대표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이들이 오로지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이 목표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정말 원하는 건지, 주변의 시선 때문인지…. 저희는 아무런 경험이 없었지만 정말 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좌충우돌하던 이들에게 공모전과 정부의 벤처지원 사업은 ‘한 줄기 빛’이었다. 창업멤버인 이성구 마케팅팀장(27·고려대 경영학과 졸업)은 “상금을 받아 투자하려고 공모전에 나섰지만 사업모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허점을 보완하는 데도 훌륭한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종 창업경진대회와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해 모두 2억2600만 원을 마련했다.

이큐브랩은 호주나 중동처럼 햇빛이 강해 태양광 전기를 만들기가 쉽고 인건비가 비싼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에 투자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의 권혁태 사장은 “이큐브랩 제품은 제조업에 IT를 합친 독특한 형태여서 해외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채널A 영상] 빅 데이터, 창업 도우미 역할 ‘톡톡’


#태양광쓰레기통#창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