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못추는 부동산시장, 투자법칙도 맥없이 깨졌다

  • Array
  • 입력 2012년 4월 23일 20시 02분


코멘트

올가을 결혼을 앞두고 주택 구매를 저울질 중인 회사원 김모 씨(30)는 혼란스럽다. 전세금과 매매가의 차이가 크지 않아 아파트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집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주저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김 씨는 “예전에는 전세금이 매매가의 60%에 육박하면 집값이 올랐다는데 요즘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던 투자원칙들이 흔들리고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시장환경이 급변한 데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기존 부동산 투자상식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이변’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채널A 영상]올해 주택 45만 가구 공급…내집마련의 꿈 이루려면

○ 흔들리는 부동산 투자법칙

전세금이 짝수 해에 크게 오른다는 ‘짝수 해 효과’가 대표적이다. 이는 199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2년마다 임대 재계약이 이뤄질 때 전세금이 큰 폭 오르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전세금이 18.4% 급락하면서 짝수효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세금은 이듬해인 1999년 무려 26.7%나 급등했다. 이후 2005년까지 짝수 해보다는 홀수 해의 전세금이 많이 오르거나 덜 떨어지는 이변을 보이다 2006년에 다시 정상 흐름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다시 전세금 상승세가 둔화됐다가 2009년과 지난해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전세금 짝수 해 효과는 사실상 폐기됐다.

매매가에서 전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전세가율)이 60%에 육박하면 집값이 오르고 거래가 활기를 띤다는 ‘전세가율 60% 법칙’이나 서울에서부터 매매가격 상승이 확산되는 ‘물결효과’ 등도 최근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지난해 1분기부터 50%를 넘은 뒤 올 1분기 54.8%까지 올랐다. 하지만 매매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해 3분기까지 소폭 상승곡선을 그리는 듯하더니 4분기 ―0.28%로 오히려 매매가가 떨어졌고, 올해 1분기 들어선 ―0.46%로 하락폭을 키웠다. 그간 ‘지배시장’ 역할을 맡았던 서울의 매매가 상승률도 꼬리를 내려 지방보다 낮았다. 특히 강남은 지난해 말 대비 ―0.7%로 전국 평균(0.6%)을 밑돌았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수도권 집값이 인플레이션 헤지(위험분산)도 못할 정도로 침체된 데다 매매시장 정체로 ‘전세 끼고 집을 사서 레버리지 효과를 누린다’는 기존 투자패턴 자체가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오리무중 된 부동산시장

부동산 투자자들의 통념을 뒤엎는 현상들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서울시내 대형, 중소형 아파트의 가격 격차가 줄면서 ‘대형 아파트=비싼 아파트’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2010년 말 기준 전용면적 85m² 이상 대형 아파트와 60m² 미만 소형 아파트의 거래가격 격차는 3.3m2당 685만 원이었지만 올해 3월에는 611만 원으로 줄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소형이 대형보다 비싼 곳도 나온다.
올해 초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의 3.3m²당 매매가는 194m²가 3171만 원, 84m²는 4079만 원으로 소형 아파트가 1000만 원이나 더 비쌌다.

내 집 마련 실수요자의 주력 부대였던 ‘30대’가 부동산 구매를 기피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한국갤럽과 부동산114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집을 살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30대는 2010년 40.6%에서 지난해 21.9%로 줄었고, 올해는 13.0%로 급감했다.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와 주거문화 다변화 등으로 ‘내 집 마련’을 포기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종전의 부동산투자 원칙들은 고도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주택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면서 앞으로는 일률적인 투자법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변해갈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부동산#투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