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하는 공산품들… 현지와 가격차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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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가 공개’ 시늉만… 폭리막을 방법 없다

아마존, 이베이 등 해외 쇼핑몰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직구족(族)’이 늘어나는 가운데 국내 수입물품의 높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구매하는 현상 자체가 국내 판매가가 워낙 비싸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언어 장벽과 배송 지연, 환불 및 교환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직접 구매에 나서고 있다.

▶본보 28일자 A2면 美 블랙프라이데이…


수입품의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은 많지 않다. 업체 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공개, 자장면 등 외식품목 가격 공개 등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가격 정보를 주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일부 수입품 가격을 공개하고 있는 정부 정책이 반쪽짜리에 불과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3년 전 수입품의 가격을 공개하기로 해놓고도 수입업체와 수출 당사국의 항의가 있자 알맹이를 쏙 뺀 채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크게 올랐던 2008년 5월 관세청은 서민 생활에 영향이 큰 90개 상품에 대한 원산지별, 브랜드별 수입원가를 공개하고 앞으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소비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수입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리바이스, 캘빈클라인 등의 멕시코산 여성용 청바지는 평균 수입가격이 2만8682원에 불과했지만 최고 19만 원에 팔렸고, 수입원가 40만 원대인 유럽산 유모차는 최고 140만 원에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수입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지만 공산품에 대한 수입가격 공개는 단 한 번으로 끝났다. 수입가격이 공개되자 수입업체들은 “영업비밀이 누설됐다”며 압력을 넣었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수출업체들도 해당국 상공회의소를 거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위배와 ‘비관세 장벽’이라고 항의해 왔다. 정부도 자칫 통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데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 협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해 공개를 중단했다.

수입가격 공개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국회는 2009년 1월 수입물품의 가격을 조사해 공표할 수 있도록 한 관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부는 “제도에 문제가 많고 GATT 등 관련 법령을 검토한다”며 2년이 지난 올해 4월에야 시행령을 만들었다. 문제는 시행령이 △수입물품의 상표 및 상호 △수입자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공개될 경우 수입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해 반쪽짜리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결국 무역 분쟁의 소지가 있는 상품명은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관세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치즈, 삼겹살, 감자 등 70여 개 농수산품의 수입가격을 공개하고 있지만 공산품 가격 공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외국업체 차별을 금지한 GATT의 ‘내국민대우’ 조항을 둘러싸고 시비가 생기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이미지가 자유무역국가가 아니라 통제무역국가로 비칠 소지가 컸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소비자단체는 “정부가 수입 공산품의 가격 공개를 포기한 것은 무역 분쟁 개연성을 이유로 국내 소비자의 권리를 내던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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