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심한 날씨에 선글라스 매출 ‘가을의 반란’… ‘트랜스포머 패션’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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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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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 심한 날씨에 패션-식품 소비패턴도 변화무쌍… 기후변화, 유통 지도를 바꾸다

선글라스는 대표적인 여름 상품이다. 그런데 올해 현대백화점에서는 선글라스가 여름이 아닌 가을과 초겨울에 더 잘 팔렸다.

올여름(6∼8월) 현대백화점의 선글라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해 매출신장률(19.5%)에 크게 못 미쳤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자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9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선글라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1% 증가해 1년 전 증가율(12.8%)의 두 배 가까이 됐다. 정민영 현대백화점 잡화팀 바이어는 “올해는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된 여름보다 맑고 더운 날씨가 이어진 가을에 야외활동이 많아진 것이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형마트 식품매장에선 농수산물의 대체재로 각종 가공식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날씨가 극단적이고 변덕스러운 양상을 보이면서 이처럼 ‘유통 지도’가 변하자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날씨로 인한 변수가 많아 상품을 미리 기획하기 힘들어지면서 ‘날씨 리스크’에 대처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 떼었다 붙였다… 트랜스포머 패션

여름에 비오는날 많아… 선글라스 가을에 더 인기(왼쪽), 농수산물 공급 들쭉날쭉… 일단 물량 확보해 가공(가운데), 의류 판매, 기온에 좌우… 업계 ‘탄력 생산’ 체제로(오른쪽).
여름에 비오는날 많아… 선글라스 가을에 더 인기(왼쪽), 농수산물 공급 들쭉날쭉… 일단 물량 확보해 가공(가운데), 의류 판매, 기온에 좌우… 업계 ‘탄력 생산’ 체제로(오른쪽).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패션매장에는 ‘트랜스포머’ 아이템이 대거 진열돼 있었다. 며칠 새 또는 밤낮으로 달라지는 날씨에 맞춰 소매나 안감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제품들이다. 올여름 폭우 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에이글’의 레인부츠는 따뜻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무릎길이 양말인 ‘워머삭스’를 탈·부착할 수 있게 고안돼 고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올가을 처음 선보인 LG패션 ‘마에스트로’의 트랜스포머 재킷은 판매 호조로 이달 말 추가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롯데백화점의 아웃도어 선임상품기획자인 강우진 과장은 얼마 전까지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다. 최근 5년간 백화점 판매신장률 1위를 고수해 온 아웃도어의 매출 성장세가 갑자기 마이너스로 돌아섰기 때문. 이달 들어 18일까지 아웃도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감소했다.

이는 모두 날씨 탓이었다. 올 5월 강 과장은 지난해 일찌감치 한파가 찾아와 거위털 점퍼가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매진된 기억을 떠올렸다. 주요 업체와 상의해 물량을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렸다. 하지만 이달 들어 19일까지 서울의 평균 기온은 13.6도로 지난해보다 6도나 높았고 두꺼운 외투를 찾는 수요는 실종됐다. 판매율은 20%가량 줄었다.

트랜스포머 부츠 따뜻한 양말을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에이글’의 ‘트랜스포머’형 레인부츠. 롯데백화점 제공
트랜스포머 부츠 따뜻한 양말을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에이글’의 ‘트랜스포머’형 레인부츠. 롯데백화점 제공
그러나 20일 이후 극적인 반전이 시작됐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20∼24일 매출이 1년 전보다 75%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서울의 평균 기온은 1.8도로 지난해 7.5도를 크게 밑돌았다. 강 과장은 “이처럼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장기 수요예측이 힘들어지면서 100% 미리 기획해 물량을 생산하던 데에서 날씨에 따라 탄력적으로 생산하는 ‘반응생산’으로 정책을 바꾸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응생산비중이 높아지자 인건비가 싼 제3국에 생산을 맡기던 업체들이 국내 생산물량을 늘리는 흐름도 포착되고 있다. 영캐주얼 A브랜드 관계자는 “제3국에서 기획생산을 하던 때보다 이익률은 줄었지만 효율적인 판매가 가능해져 전체적으로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반응생산비율을 2007년 28%에서 올해 41%로 올린 데 이어 연간 상품 기획 횟수도 같은 기간 8회에서 24회로 늘렸다.

화장품 업계도 날씨를 제품 개발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기 시작했다. LG생활건강은 매년 한파가 지속되면서 여성들이 주로 건조한 실내에서 지내게 된 점을 고려해 최근 화장을 한 얼굴 위에도 수시로 바를 수 있는 보습에센스 ‘숨 A타임 에센스’를 내놓았다.

○ 냉동, 건조, 발효식품 늘어


대형마트와 백화점 식품관에서는 말리거나 얼린 가공식품의 비중이 최근 2년 새 크게 늘었다. 한반도 일대 수온 변화와 이상기온으로 농수산물 수확량이 일정치 않아졌고 이로 인해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과일값, 배추값 파동이 일었던 지난해 가공식품 판매가 급등하면서 올해까지 신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생산이 집중되는 수확기에 최대한 물량을 확보한 뒤 가공한 상품을 대체재로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의 올해 냉동과일 매출액은 지난달 말까지 89억9100만 원으로 2010년 한 해 매출인 37억9100만 원의 2.4배에 이른다. 건과일 매출액도 75억2700만 원으로 지난해 한 해 매출 71억9900만 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두부와 냉장 생과일주스 등의 판매량도 늘었다. 두부는 생선이 한반도 일대 수온 변화 등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자 단백질을 공급할 대체재로 꼽혀 매출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현재 홈플러스의 두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 늘었다. 올해 봄철 냉해와 여름철 긴 장마로 과일의 작황 상태가 나빠져 가격이 치솟으면서 과일 대신 주스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년 대비 0.7%에 그친 냉장주스 매출 신장률은 올해 10.7%로 뛰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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