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힘좋고… 전기차의 ‘가속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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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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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전기차 ‘e-트론’… 日서 A1-A3 시승해보니

일본 하코네 도요타이어 턴파이크에서 아우디 전기차 ‘e-트론’이 달리고 있다. 아우디 제공
일본 하코네 도요타이어 턴파이크에서 아우디 전기차 ‘e-트론’이 달리고 있다. 아우디 제공
18일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가나가와 현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드라이빙 코스인 도요타이어 턴파이크. 후지 산의 절경을 등진 고도 1011m의 산등성이를 타고 14km에 달하는 굽이진 도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곳은 ‘하시리야(走り屋)’라고 불리는 일본 자동차 마니아들의 성지. 완성차업체들이 신차 성능테스트에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우디는 한국 일본 호주 대만 싱가포르 등 5개국 기자단을 이곳으로 초청해 자사의 전기차 라인업인 ‘e-트론’을 소개하고 시승행사를 개최했다. 전기차의 ‘효율성’이 아닌 ‘달리는 즐거움’을 알리겠다는 목표에서다.

○ 럭셔리 차 업체,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잇달아 개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앞다퉈 전기자동차 개발에 힘써왔지만 ‘전기차시대’는 아직도 요원하다. 업계는 전기차 보급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충전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 부족 및 높은 생산비용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기차 가격은 동급 일반차량의 최고 4배 수준. 전기차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디를 비롯한 고급 자동차업체들은 ‘역발상’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전기모터를 주동력으로 삼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개발하는 것. 전기차는 가격이 비싸지만 가속능력이 탁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류의 특성상 휘발유 등 기존 내연엔진과 달리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최대 토크(엔진을 움직이는 회전력)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속이 부드럽고 균일하다. 변속 시 멈칫거림이 없는 시원한 질주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고성능 스포츠카 오너들은 높은 신차 구입비용에 대한 저항감이 크지 않다. 또 개인주차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파트 등 집단거주지역에 비해 개인 충전시스템 구축도 어려움이 덜하다. 업체들은 이러한 소비자층에서 전기차 수요를 찾는 것이다.

아우디는 자사 최고급 스포츠카인 R8의 전기차 모델인 ‘R8 e-트론’을 내년에 출시한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기존 소형·준중형차인 A1과 A3의 e-트론 모델을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BMW는 올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선보인 순수 전기차 ‘i3’을 2013년 출시한 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일반 가정에서 충전해 쓸 수 있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모터와 내연기관 엔진을 번갈아 사용해 연료소비효율을 높이는 친환경차) 방식의 스포츠카 ‘i8’을 출시한다. 벤츠도 올해 디트로이트모터쇼에 출품한 전기스포츠카 ‘SLS AMG E-셀’의 양산을 결정했다. 전기스포츠카 ‘박스터E' 콘셉트카를 내놓은 포르셰는 2020년까지 신차의 20%를 전기차로 채운다는 계획이며 미국 전기차 전문업체인 테슬라는 이미 전기스포츠카 ‘로드스터’를 판매하고 있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이르면 2013년부터 전기차 포뮬러 레이스를 개최한다.

○ 아우디 ‘e-트론’, 휘발유차 ‘운전 재미’ 재현에 초점

아우디의 소형·준중형차인 A1과 A3의 전기차와 휘발유 모델을 번갈아 시승했다. A1 e-트론은 구동방식이 제너럴모터스(GM)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 ‘쉐보레 볼트’와 유사하다. 배터리 충전만을 위한 소형 휘발유엔진을 탑재해 주행가능 거리를 250km까지 늘렸다. 배터리만 가지고도 50km를 달릴 수 있다. 100km 주행에 필요한 휘발유는 1.9L. 연비가 L당 50km가 넘는 것이다.

A3 e-트론은 순수 전기차다. 일본 산요의 리튬이온전지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최장 135km를 달릴 수 있다. 충전시간은 급속 4시간, 완충 9시간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148k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11.2초가 걸린다. 최고출력은 136마력으로 A3 휘발유차(1.4 TFSI·125마력)보다 힘이 좋다. 운전모드는 효율성 위주의 ‘이피션시’와 역동성을 높여주는 ‘다이내믹’, 일반 주행인 ‘오토’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두 차종 모두 일반 휘발유차와 비교해 성능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초반 저속에서의 움직임과 가속감 등 실제로 느껴지는 성능은 뛰어났다. 변속이 없어 부드럽게 속도를 붙여나갔다. 모터가 작동할 때 나는 소음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 전기차 특유의 위화감도 덜했다.

아우디 e-트론의 특징은 일반 휘발유차에서 수동모드로 변속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개발한 장치인 패들시프트(운전대 옆에 달려 손가락으로 기어를 변속할 수 있는 장치)를 기어변속이 없는 전기차에도 고스란히 재현했다는 점이다. 단수를 내리면 배터리 충전비중을 높이고 단수를 높이면 배터리 사용비중을 높여 동력성능을 올리는 기능을 한다. 마치 휘발유차의 기어를 내려 속도를 줄이는 엔진브레이크와 유사한 주행법이 가능했다.

아직 개발 과정에서의 콘셉트카이지만 A1과 A3 e-트론을 시승하며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고성능 전기차의 미래를 엿봤다. ‘즐거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다.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전기차가 휘발유차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을 추구하는 자동차의 가치는 남게 되지 않을까.

하코네(일본)=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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