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銀 21일째 장기파업 숨은 이유는 문화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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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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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일터-동료는 내가족”… 使 “그게 왜 가족?”

개별 성과급제 도입을 둘러싼 SC제일은행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17일로 21일째를 맞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27일부터 강원 속초시의 한 리조트에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으며, 사측은 43개 지점 영업 중단이라는 강공으로 맞서고 있다. 파업 사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영국인 행장과 한국인 노조원들 간의 언어·문화적 장벽이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SC제일은행 경영진은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는 물론이고 직원 기본급에도 차등을 두는 성과급제 도입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힐 행장보다 영국 런던 SC본사에서 더 강경한 자세다. 런던 본사에서는 “연공서열에 민감한 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지만 싱가포르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SC은행에서도 성과급제도를 도입했는데, 유독 한국만 별나게 행동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SC제일은행 경영진은 고용 안정성이라는 개념도 낯설어 한다. 어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면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하면 되지, 한 회사에서 평생을 일하겠다는 것은 무능함의 표상이자 자신이 스스로의 몸값을 떨어뜨리는 행위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 노조와 대화할 때는 문화적 차이가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 김재율 노조위원장이 “일터와 동료는 내 가족이다”고 하면 힐 행장은 “그게 왜 가족이냐”고 반문하는 식이다. 통역을 통해 대화하는 상황도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적 충돌을 키우고 있다. 올해 4월 퇴임한 김영일 전 SC제일은행 부행장은 2009년 직원들의 자세를 애완견과 비교하며 영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 김 위원장은 파업 관련 협상을 위해 힐 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부행장의 당시 발언이나 이후 행동들은 조직폭력배나 다름없었고, 성과급제를 밀어붙이는 경영진의 태도도 지나치게 강압적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 조직폭력배라는 말이 통역을 거치면서 ‘마피아(Mafia)’로 둔갑하고 말았다. 힐 행장은 “우리가 마피아냐”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은 “힐 행장은 대화 중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이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머스트(must)’ ‘해븐트(haven’t)’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면 좀 거북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영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결론을 말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 대해 장시간 설명한 후 마지막에 결론을 얘기하는 한국인 특유의 화법에 관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조직(HR) 전문 컨설팅회사인 머서코리아의 박형철 대표는 “‘이 부분은 당신 말도 맞다’며 처음에는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한 다음 대화 말미에 처음과 상반되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한국인의 화법은 외국인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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