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자랑이던 깨끗한 문화 훼손”… 이건희 회장, 내부비리 듣고 격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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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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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이 그룹의 계열사 감사 과정에서 회사의 내부 비리가 적발된 데 책임을 지고 8일 오전 삼성 사장단회의 직전에 사표를 제출했다. 내부 비리로 삼성 계열사 사장이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은 관계자 문책과 그룹 감사기능 강화를 지시했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된 데 대해 이건희 회장이 전날 강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사표를 낸 오 사장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7일 삼성테크윈의 경영진단 결과 보고 때 내부 비리를 들은 이 회장은 “해외의 잘나가던 회사들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며 단호한 비리 처벌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4월부터 매주 화, 목요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으로 정기 출근한 이래 가장 크게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을 대로하게 한 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방산(防産)업계는 삼성테크윈이 국방부에 납품하는 K9 자주포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삼성테크윈은 1977년 삼성정밀로 출발해 자주포와 장갑차, 전투로봇 등을 주력으로 하는 방위산업체다.

삼성은 올해 2월부터 40여 일간 20여 명을 투입해 경기 성남시 삼성테크윈 본사와 경남 창원공장을 감사했다. 삼성 측은 정례 경영진단이라고 하지만 방산업계에서는 지난해 K9 자주포가 잦은 결함을 일으킨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K9 자주포는 지난해 8월 군 훈련 중 조향장치 이상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이어 11월 연평도 피격 때는 연평부대에 배치된 6문 중 절반만 작동한 사실이 알려져 부실 논란을 빚었다. 방산업계에서는 “K9 자주포가 잦은 고장을 내자 삼성테크윈이 받은 부품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많았고, 삼성이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납품 비리 등이 드러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삼성 내부에서도 K9 자주포 부품 납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비리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삼성 공식라인은 구체적인 비리 내용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삼성이 자랑하는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된 부분이다. 사회적 통념상 그렇게 크지 않은 문제라도 삼성에서는 문제가 된다는 질책”이라고 했다. 이어 “오 사장은 비리와 관련이 없고, K9 자주포와도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테크윈의 비리가 K9 자주포와 관련된 것이든 아니든 삼성은 충격에 빠졌다. 평소 협력업체에서 금품이나 접대를 받는 것을 가장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부정이 있는 회사에서 좋은 물건이 나올 리 없고, 설령 좋은 물건이 나오더라도 소비자들이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고 이병철 창업주도 “일을 잘하려다 실수하면 용서하지만 사욕을 위해 부정을 하면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었다. 삼성 협력업체 사이에서는 ‘삼성이 지독하게 굴어도 뒷돈은 안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삼성의 각 계열사는 이번 일이 그룹 전체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긴장하고 있다. 이 회장이 격노한 이유가 ‘우리 직원들은 깨끗하다’는 믿음이 깨져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조직을 매섭게 다잡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린다’는 우려로 회장이 일벌백계(一罰百戒)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회장은 감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은 “감사를 아무리 잘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감사 인력 및 자질을 강화하며, 감사를 독립조직으로 운영하도록 주문했다. 현재 삼성 계열사별 감사조직은 실(室) 산하이며 감사팀장의 직급은 부장부터 전무까지 제각각이다.

이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 후 미래전략실이 여러 계열사의 경영진단을 진행하는 점을 감안할 때 감사의 강도가 세지면 ‘제2의 테크윈 사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삼성에 대대적인 인적쇄신 바람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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