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예측불허의 시대 ‘민첩성’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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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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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실패로 본 교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렸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비합리적이고 안일한 대응으로 위기를 키워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간판 기업 도요타자동차 역시 세계 1위 자동차업체가 되자마자 대량 리콜 사태로 휘청거린 바 있다.

세계 최고의 경영 역량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던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까닭은 무엇일까.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그 이유를 조직 민첩성(organizational agility)의 부재에서 찾았다. 조직 민첩성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능력을 말한다.

신 교수는 “불확실성과 급변성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민첩성은 조직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일본 정부와 기업은 20세기에 중요했던 전략 계획 및 운영 관리에만 치중하다 조직 민첩성 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DBR 79호(2011년 4월 15일자)에 실린 신 교수의 글을 간추린다.

○ 조직 민첩성이 중요해진 이유


조직 민첩성은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초일류 기업의 몰락과 맞물려 세계 경영학계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07년 말까지 수십 년 동안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군림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정부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GM의 쇠락으로 세계 1위가 된 도요타 역시 리콜 사태로 곤욕을 겪었다.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도 스마트폰 등장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공룡 기업들의 갑작스러운 부진은 21세기 초경쟁 환경의 속성 때문이다. 초경쟁 환경은 앞날을 예측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며 환경 변화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조직에 어떤 위기가 언제쯤 닥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초경쟁 환경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한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될 때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전략을 갖춰놓고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기존 전략이나 운영 관리 방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심각한 위기가 시시각각 닥치기 때문이다. 20세기 기업들은 뛰어난 전략 계획 역량이나 효율적인 운영 관리 능력 중 한 가지만 보유해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창의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 조직 민첩성의 3요소


조직 민첩성 역량을 키우려면 이를 구성하는 3대 요인의 속성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첫째 요인은 상시 경계(vigilance)다.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항상 주변 환경을 감시하고 예의주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최대한 신속하게 상황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도 필요하다. 일본 원전 사고는 일본 정부가 초기에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큰 위기로 번졌다. 원자로를 재사용하기 위해 냉각수 투입을 미루다 원자로를 살리지도, 위기를 조기에 진화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요인은 유연성(flexibility)이다. 이는 상황의 본질을 파악한 후 기존 관행, 절차, 규칙에 없던 조치나 행동이라도 서슴지 않고 단행하는 능력이다. 일본 정부는 지진 구호 활동 당시 기존 규칙과 절차에 지나치게 얽매여 과감한 대처에 실패했다. 구호 현장에 바로 투입해야 할 자원봉사자들의 이력서를 꼼꼼하게 점검하거나, 길에 나뒹구는 자동차를 치울 때도 소유주의 승인을 받으려고 시간을 낭비했다.

마지막 요인은 조직 민첩성의 핵심 요소인 신속성(speed)이다. 이는 사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원전 사고, 도요타의 리콜 사태에서 보듯 초기 해결 기회를 놓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곤 한다. 20세기 경영은 빈틈없는 사전 계획 수립, 모든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사전 점검 등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일의 진행 속도가 느려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자주 발생하는 21세기에는 신속성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극도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치밀한 전략 기획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조직은 예상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조직 민첩성이 여러 혁신적인 시도가 많이 필요한 창업 초기나,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만 필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조직 민첩성은 모든 조직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보유해야 할 상시 역량이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기업만이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1호 (2011년 4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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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 세계 직원 30만 명은 매년 윤리경영 서약서에 서명하고, 14개의 윤리경영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전 세계 100여 개국의 GE 사업장에서 예외 없이 적용된다. 윤리경영 원칙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 그래서 윤리경영과 관련해서는 “로마에 가도 GE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채찍만 들이대진 않는다. GE의 윤리경영 원칙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항상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GE의 한국 총괄 법률담당 및 컴플라이언스 리더인 권재용 변호사에게 GE식 윤리경영의 요체를 들었다.

회사내 지식 활용하는 노하우

▼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AECOM 테크놀로지는 아르헨티나 공장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닥쳤다.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의 폭발 위험이 제기된 것. 본사는 물론 전 세계 지사에 비상이 걸렸다. 사내 모든 전문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달렸다. 결국 호주에서 근무하는 AECOM 엔지니어가 대안을 내놨다. 사내 지식시장에서 문제 해결법을 찾아낸 것이다. 조직이 커지고, 업무가 세분되면 이 같은 해법이 쉽게 먹히지 않는다. 오죽하면 전 HP 최고경영자(CEO)인 루이스 플랫이 “HP가 회사 내에 어떤 지식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만 했어도 생산성이 3배는 높아졌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을까. 사내 지식시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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