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잡화 롯데’, 아들이 ‘글로벌 롯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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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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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동빈 회장 승진… 창립 44년 만에 본격 2세 경영 체제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롯데홈쇼핑 스튜디오를 방문해 방송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롯데홈쇼핑 스튜디오를 방문해 방송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1940년대 중반 일본에는 우유 배달을 하며 와세다대를 다니는 20대 조선인 청년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시간이 워낙 정확해 멀리까지 소문이 났다.

이 청년의 성실함을 지켜본 한 일본인 노인이 6만 엔의 거액을 대주며 커팅오일(선반용 기름) 사업을 권했다. 하지만 사업을 준비하던 공장이 미군의 공습을 받아 불타며 빚더미에 올랐다. 화학도였던 청년은 도쿄의 낡은 창고에서 커팅오일을 활용해 비누와 껌을 만들어 팔았다.

이 청년은 1948년 일본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를 차렸다. 이후 성공을 거듭하며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사세(社勢)를 확장해 회사를 국내 재계 5위로 키웠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89) 얘기다.

그는 10일 롯데그룹 임원인사를 통해 자신은 총괄회장에 오르고,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56)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창립 이후 44년 만에 ‘2세 경영체제’가 본격화된 셈이다.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는 오랫동안 아들(신동빈 회장)을 매섭게 훈련시켰다.

1942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행 연락선을 탔던 뚝심의 아버지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유복하게 태어난 아들을 ‘경영의 광야’에 내보냈다. 신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경제학부와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곧바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갈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다른 회사에 들어가 스스로 실력을 기르도록 했다. 신 회장은 노무라증권과 일본 롯데상사에서 1981년부터 10년간 평사원으로 일했다. 아버지의 계산된 트레이닝이었다. 아들이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일했던 1980년대 중반은 영국 기업들이 ‘빅뱅’으로 알려진 금융개혁 드라이브를 걸던 시기다. 아들은 선진 기업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시스템을 피부로 접했다. 그는 1990년 비로소 롯데 계열사의 하나인 호남석유화학의 상무이사가 됐고 다시 7년이 흘러서야 롯데그룹 부회장을 달았다.

아버지는 그룹 사장단 회의가 열릴 때면 아들을 자신의 왼쪽 옆에 앉혔다. 아들은 그렇게 10여 년을 앉아서 아버지의 경영을 고스란히 보고 배웠다.

롯데그룹 임원들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경영에 있어 언제나 투입 대비 효과를 철저히 따진다”며 “일본의 TV 보급률이 치솟는 시기를 포착해 대대적 TV 광고로 일본에서 ‘껌 제국’을 이룬 아버지와 국제 금융통 아들이 치밀한 면에서는 똑같다”고 혀를 내두른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2009년 6월 계열사인 경기 안산시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안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 회장이 2009년 6월 계열사인 경기 안산시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안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그룹 정책본부장으로 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한 2004년(매출 23조 원) 이후 6년 만인 지난해(61조 원) 회사를 3배로 키워냈다.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해 자금력을 키우고, 롯데손해보험(2007년)과 롯데주류BG(2009년) 등을 출범시키며 사업 다각화를 이뤘다. 이번 인사에서 일본 롯데를 책임지고 있는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57)과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69)은 자리 변화가 없었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후계자리를 공고히 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경영의 날개를 단 차남을 향한 아버지의 혹독한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예전과 다름없이 격월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매사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한 신 총괄회장과 대조적으로 아들 신 회장은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그가 경영을 총괄한 2004년 이후 성사된 인수합병(M&A)만 무려 25건이다. 지난해에는 롯데쇼핑의 GS리테일(백화점과 마트 부문) 인수와 호남석유화학의 말레이시아 타이탄 인수에 각각 1조 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는 2018년까지 그룹 매출을 200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글로벌 롯데’로의 도약은 가능할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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