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막강파워]‘CEO 사관학교’ 삼성 출신 133명이 年47조 매출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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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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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 100억이상 기업 삼성출신 임원 1180명 조사

《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존경받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동시에 한국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두려운 권력’처럼 비치기도 한다. 동아일보는 국내 최대 기업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DB)인 NICE신용평가정보의 ‘후즈라인’ 인물DB를 분석해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을 비롯한 삼성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또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매년 외부감사를 받는 자산총액 100억 원 이상인 기업 1만7422개 전체와 삼성을 비교했다. 이는 일정 규모가 되는 국내 기업 전체와 삼성을 직접 비교한 국내 첫 조사다. 》
#1 1997년. 한국에도 인터넷이 차츰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삼성SDS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사내 벤처’라는 별동대 같은 조직을 만들어 회사 속의 회사처럼 운영해보자는 것이었다. 여러 개의 사내 벤처 가운데 ‘네이버컴’이란 회사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회사였다. 2년 동안 이 회사를 운영하던 연구원 이해진 씨(당시 32세)는 1999년 삼성을 나가 직접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성SDS도 이 회사에 출자했다.

초기 네이버에는 검색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수입이 없었다. 그때 의기투합한 사람이 삼성SDS 입사동기였던 김범수 한게임 대표. 온라인게임업체 한게임은 수익모델은 있었는데 방문자가 부족했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은 합병해 NHN이 됐고 시너지 효과는 놀라웠다. 네이버의 방문자는 한게임 사용자가 됐고 한게임이 버는 돈은 네이버의 검색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됐다. 창업 10년 후인 2009년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NHN은 1조3574억 원의 매출과 4209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 2000년 5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삼성전자 시스템사업부장 출신인 김영찬 씨(당시 54세)의 취미는 골프, 잘하는 건 영업, 하고 싶은 건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창업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스크린골프업체 ‘골프존’이다. 2002년까지 매출을 한 푼도 올리지 못했고 가진 돈 5억 원을 탈탈 털어 넣었지만 이렇게 만든 제품은 어디서도 원하질 않았다.

2년이 더 지났다. ‘스크린골프장’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다. 실내골프연습장에서 골프연습을 하라고 만든 기계가 ‘게임용’으로 쓰이게 됐다. 김 사장의 취미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의 대표상품이 됐고 특기였던 영업은 회사가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컴퓨터 기술은 이 모든 걸 이어주는 접착제였다.

○ 한국 경제계의 삼성맨

삼성은 한국 경제계에서 ‘인재사관학교’라고 불린다. 채용 때부터 우수인력을 휩쓰는 데다 양질의 사내교육으로 꾸준히 관리되다 보니 삼성맨은 이직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번 조사 대상인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임원은 모두 4만8254명. 이 가운데 2.4%인 1180명이 삼성 출신이었다. 현대자동차, SK, LG그룹 출신 임원은 각각 0.5% 정도를 차지했지만 삼성 출신은 그 다섯 배에 달하는 셈이다. 최고경영자(CEO)도 삼성 출신이 전체의 0.7%로 타 그룹 출신(0.3∼0.4%)의 두 배였다. 삼성 출신에 대한 한국 산업계 전반의 신뢰를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매출액 10위권 안에 드는 거대 금융기업 중에는 삼성 출신 CEO를 영입한 곳이 상당수다. 이 중 신은철 대한생명 대표는 삼성생명 인사부장과 인사담당 이사를 거쳐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을 지낸 인사 분야 전문가다. 그는 2002년 대한생명 고문으로 영입된 뒤 2005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권처신 한화손해보험 대표도 30년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서 일한 삼성맨 출신이다. 대우증권 임기영 대표와 메리츠화재 원명수 대표는 각각 삼성증권과 삼성화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삼성에서 경력을 쌓은 뒤 창업해 중견기업인의 반열에까지 오른 CEO도 꽤 된다.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등 정보기술(IT) 업종에서 일하던 사람이 많다. 중견기업 골프존의 김영찬 사장과 NHN의 이해진 최고전략책임자(CSO), 김범수 전 한게임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넥센타이어 CEO로 선임된 이현봉 대표이사 부회장은 삼성전자 생활가전 총괄사장 출신이며 이전 CEO였던 홍종만 넥센타이어 회장 또한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출신이다. 넥센타이어는 홍 회장이 CEO를 맡았던 2009년 매출 9662억 원, 순이익 1143억 원의 실적을 올렸으며 2010년에도 3분기(7∼9월) 말 기준 매출이 이미 1조 원을 넘어섰다.

이번 조사에서 삼성 출신 CEO가 이끄는 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3553억 원, 순이익은 125억 원이었다. 이는 전체 기업 평균 매출액(1150억 원)과 순이익(41억 원)의 3배가 넘는다. 또 삼성 출신 CEO는 133명으로 전체의 0.7%였지만 이들이 이끄는 기업의 매출액은 전체의 2.1%, 영업이익 2.0%를 차지했다.

○ “삼성 출신 CEO가 만능은 아냐”

‘삼성맨의 경쟁력’에 대해 삼성 측은 “교육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한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서는 각종 교육을 통해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가르친다”며 “너무 효율에 치중하다 보면 차갑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이를 깨기 위한 교육까지 한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에서 삼성 출신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시키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한 중견 기업 CEO는 “삼성의 차장급 이하 직원들을 스카우트하면 훌륭한 인재가 좋은 머리로 열심히 일하니까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부장급 삼성 직원을 임원으로 스카우트했더니 우리 같은 중견 기업에 필수적인 ‘맨땅에 헤딩하기’를 너무 어려워하더라”며 아쉬워했다.

경영학자들은 앞으로 삼성과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꽉 짜인 ‘효율’ 위주의 교육으로 성공을 이뤘던 ‘관리의 삼성’이 ‘창조의 삼성’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는 “삼성의 문제는 창조경영을 못한다는 것”이라며 “삼성은 앞으로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리더이자 창조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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