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섹션 피플]변대규 휴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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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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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매출 독립 기업들 한국서 손꼽을 정도…
‘늙은 경제’ 안타까워

사진 제공 휴맥스
사진 제공 휴맥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대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하면서 미국 대학생들의 창업 열기에 놀란 지도교수는 “한국의 HP를 만들어보라”며 제자들을 연구소 밖으로 떠밀었다. 1989년의 일이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박사과정 학생들은 벤처라는 말도 생소하던 시절 열정만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그게 휴맥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여 년. 이 회사는 26일 2010년 매출이 1조52억 원으로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날은 충분히 축하할 만한 날이었다. 하지만 변대규 휴맥스 사장(51·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허탈하다”고 말했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 회사는 제품의 98%를 해외 시장에 내다팔기 때문에 굳이 언론에 나서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기업을 알릴 필요도 없는 회사다. 하지만 뭔가 답답해 보였다. 변 사장은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NHN이 있어요. 그리고 웅진과 이랜드, 지금은 어려워졌지만 한때는 삼보컴퓨터도 매출이 1조 원을 넘었네요. 그리고 우리…. 한두 곳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는 이게 전부 같아요.” 그는 최근 40년 동안 대기업 계열사 외에 창업해서 매출 1조 원을 넘긴 한국 회사를 더는 모르겠다며 이런 한국 경제를 가리켜 ‘늙은 경제’라고 불렀다. “젊은 경제란 큰 기업이 망할 수도 있고, 작은 기업도 크게 성장하는 경제인데 그동안 한국에서는 큰 회사는 더 커지고 작은 회사는 더 작아지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했다. “일본은 미국 기업의 품질을 빠르게 쫓아가며 40년 만에 미국 전자업체와 자동차업체를 모두 따라잡았지만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데 실패해 국민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정체된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구글도 나오고 애플도 나왔다. 변 사장은 “한국의 경우 국민들은 도전적인 기질에서는 일본보다 낫지만 사회 시스템은 미국보다는 일본과 비슷해 앞으로 일본 같은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한다. 그도 대기업에 문제는 있다고 했다. “실무자들을 실적만으로 평가하니 자연스레 중소기업을 옥죄게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변 사장은 “대기업 경영자들이 철학을 갖고 실무자들을 평가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도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게 변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된다’ 하는 산업에 우르르 몰려 스스로 과당경쟁을 벌이며 교섭력을 약화시킨다”고 꼬집었다. “한국에 있는 셋톱박스 업체나 카스테레오 업체 수가 세계 관련 기업 수의 절반은 된다”는 것이다. 또 “벤처기업들이 한국 환경만 탓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국내 벤처기업도 아이디어와 열의가 있으면 투자를 받을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졌으니 제대로 일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휴맥스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 창업을 꿈꾸는 후배 기업인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한 건 해외 진출이었다. 그는 “매출 1조 원의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다”며 “오히려 그리 높지 않은 담만 넘어선다면 해외 시장이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보다 편하다는 걸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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