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솟음치는 아시아]<3>거대 경제권으로 떠오르는 아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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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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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두둑해진 인구6억 소비시장, 아낌없이 쓴다

자카르타 대형마트 지난해 12월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롯데마트 ‘간다리아시티점’을 찾은 고객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마트
자카르타 대형마트 지난해 12월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롯데마트 ‘간다리아시티점’을 찾은 고객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사진 제공 롯데마트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7시 베트남 호찌민 시 동커이 거리. 꽃으로 수놓은 것 같은 불빛 축제인 루미나리에가 한가득 펼쳐졌다. 동커이 거리는 서울 명동 같은 쇼핑의 중심지다.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에도 곳곳에 눈사람과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됐다. 거리는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로에 빽빽이 들어찬 오토바이와 자동차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교통 대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현지인 통역은 “24일엔 더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쇼핑센터도 안전을 우려해 오후 6시까지만 영업한다”고 귀띔했다. 10년 전만 해도 베트남에서 연말의 화려한 분위기와 흥청거리는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교와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지만 크리스마스의 열기는 선진 기독교 국가 못지않았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쇼핑과 휴식을 위한 일종의 연말 이벤트다. 말레이시아 정부 산하 e러닝 담당기관인 MDeC의 노리잔 라잘리 박사는 라마단을 기념해 메카를 다녀온 무슬림인데도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일과 쇼핑을 즐기기 위해서다.

쿠알라룸프르 車매장 지난해 12월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샤알람 지역 내 현대자동차 쇼룸에 한 고객이 찾아와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아태지역 헤드쿼터
쿠알라룸프르 車매장 지난해 12월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샤알람 지역 내 현대자동차 쇼룸에 한 고객이 찾아와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아태지역 헤드쿼터
최근 수년 사이 소득이 증가하고 쇼핑몰이 발달하면서 크리스마스는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갓 생겨난 쇼핑몰들에 크리스마스는 최고의 이벤트 기회이기 때문이다. 쇼핑몰들은 저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특별세일을 진행하며 소비자를 유혹했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5∼6년 전부터 본격화했다. KOTRA 베트남 무역관의 과장급 직원 레밍부 씨(41)는 “10년 전엔 크리스마스가 여유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행사였는데 지금은 대중화됐다”며 “나도 아이들에게 20만 동(1만1000원)짜리 선물을 사줬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씀씀이도 커졌다. 동커이 거리 최고급 쇼핑몰인 빈콤센터 앞에서 만난 32세 가장 팟 씨는 “12월에는 500만 동(29만1000원) 정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500만 동은 그의 한 달 치 월급에 가까운 돈이다.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1년 410달러에 불과했지만 2008년 890달러로 2배 이상으로 뛰었다.

방콕 쇼핑몰 지난해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한 태국 방콕의 한 쇼핑몰에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태국 판매법인
방콕 쇼핑몰 지난해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한 태국 방콕의 한 쇼핑몰에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태국 판매법인
최근에는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고급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2007년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를 넘어선 태국에는 디자인을 중요하는 소비패턴이 나타났다. 삼성전자 태국 판매법인 조철호 차장은 “태국인은 스타일리시한 제품을 좋아한다”며 “핑크색 휴대전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나라”라고 말했다. 태국인들은 2, 3년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바꾼다. 얼리어댑터가 많은 한국과 비슷하다.

해외여행도 활성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대자동차의 현지 채용 직원인 제인 차우 씨(30)는 “지난 3년간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마카오 등 외국 4곳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000∼4000링깃(약 110만∼147만 원). 제인 씨는 최근 2박 3일간 태국을 여행하면서 월급의 절반 정도인 1750링깃(약 64만 원)을 썼다. 미혼이라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 개인소득 7년새 2배… 젊은 인구 많아 잠재력 커 ▼

1980년대 이후 아세안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힘은 외국인 투자였다. 넓은 시장에다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이 아세안의 무기다. 1985년 이후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아세안으로 일부 생산기지를 이전한 것이나 2010년 국내 철강사인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 일관제철소를 세우면서 총 27억 달러(약 3조500억 원)를 투자한 것은 아세안 각국의 산업을 고도화하는 주요 요소다.

아세안은 이런 요인들을 바탕으로 소비력과 생산력을 동시에 갖춘 거대한 경제권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아세안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7797억 달러, 인구는 5억9000만여 명에 이른다. 특히 젊은 인구가 많아 향후 20∼30년간 소비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란 점은 더욱 매력적이다.

현재 아세안은 기존 자유무역지대에서 공동시장(혹은 단일시장) 성격을 지닌 아세안 경제공동체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아세안이 2015년 출범을 목표로 추진하는 아세안공동체(ASEAN Community)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의 형성을 골자로 한다. AEC는 역내 국가 간 상품과 서비스, 투자, 숙련 노동자, 자본이 좀 더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비 측면에서는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생산 측면에서는 하나의 생산기지로 통합되게 된다. 외국 기업들은 아세안 중 한 개 국가에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어 타 아세안 회원국에 수출할 경우 무관세 혜택을 보게 되며, 이에 따라 아세안에 대한 투자 매력은 더욱 높아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전망 2010’ 보고서를 통해 아세안이 2015년까지 평균 8% 이상의 경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세안 강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 6%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콕·쿠알라룸푸르·호찌민=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ASEAN·아세안 ::

1967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5개국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이후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추가로 참여해 회원국은 총 10개국이 됐다. 회원국 전체 인구는 5억9000만 명, 면적은 450만 km², 총 국내총생산(GDP)은 2조7797억 달러(2008년 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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